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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애취애 Aug 11. 2023

놀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놀자”라고 마음 먹고 움직인 적은 1년에 몇 번 안 된다. 작년에는 12월 14일이었다. 얼마나 희귀한 날인지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금년에는 지난 주 금요일, 8월 4일이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는 오프라인 독서모임 책거리 이벤트가 있었다. 읽기와 토론이라는 독서모임의 행동 양식은 내려 놓고, 그냥 먹고 떠들었다. 덕분에 요즘 김피탕(김치, 피자, 탕수육)이 유행이고, 입추(立秋)는 말복보다 빠르고, 아이폰에는 건강이라는 앱에 만보기가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치킨, 피자 먹고 콜라, 사이다, 환타 마시며 수다 떨었다.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을 때가 새벽 1시 30분쯤이었다. 그리고 12시간을 잤다. 그때의 수면 질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일어나서도 5-6시간 동안 멍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내가 원했던 수면이었다. 

나는 항상 잠을 잘 못 잔다고 말한다. 아내는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자기 옆에서 얼마나 잘 자는데, 그런 말을 하는 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나는 항상 뇌가 살짝 흥분한 상태인 것 같다. 잠자리에 들면, 빨리 내일 왔으면 좋겠다고 여긴다. 빨리 월요일 되었으면, 혹은 빨리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다음날 해야 일들을 떠올린다. 즐거운 아침(굿모닝)이긴 한데, 깊은 잠을 자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정말 정신 없이 자고 싶은데,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 토요일 새벽에 그렇게 잤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자고 싶다. 그래서 원인들을 생각해 보았다. 금요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깊은 수면에 빠진 것일까? 아니면 오프라인 상황에서 여러 멤버들과 대면한 스트레스가 피곤도를 가중시킨 것일까? 혹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논다는 것은 “쓰지 않은 감각의 활성화”라고 나는 정의한다. 하루종일 밖에서 육체노동을 한 사람은 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 휴식이다. 반대로 온종일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는 것이 휴식이다. 스트레스란 몸의 특정 감각이 지속적으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기에, 실험등의 이유로 계속 잠만 자는 사람의 경우에는 잠을 자는 것이 스트레스다.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 떠든 행위가 그동안 쓰지 않았던 감각을 활성화시켰을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 왔다. 시각과 청각만 활용해서 소통을 해 왔다. 당연히 후각, 미각, 촉각은 활성화 되지 않는다. 그런데 만나서 먹고 마시며 떠들었으니, 최소 후각과 미각의 활성화가 이루어졌다.

또, 나는 수다를 일종의 정신줄을 놓는 행위로 본다. 의도적으로 쓸데 없는 이야기를 나열해서 긴장의 끈을 풀어버린다. 수익과 성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면, 그건 비즈니스 상담이 되어 버린다. 다시 긴장의 끈을 조이는 일이다. 그래서 정말 잡다한 이야기를 내뱉으며 몸과 뇌 근육을 이완시킨다. 나사가 풀린다.

그렇게 나사가 풀린 상태에서 다른 사람, 다섯명의 시선과 집중력을 몸으로 받아낸다. 오프라인에서의 집중력은 온라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는 같은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화자(話者)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귀를 기울인다. 말하는 사람이 청자(聽者)의 집중력을 충분히 느낀다. 그리고 반대로 청자가 되면, 딴짓을 할 수 없다. 듣는 사람들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화자가 눈동자 한번 굴리면 다 시야에 들어온다.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수다는 청자와 화자가 수시로 뒤바꾼다. 웃고 떠드는 잡담의 파도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또 다른 긴장을 요구 받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막차 안에서, 지하철 안 풍경을 관찰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승객들은 거의 대부분이 퍼져 있었다. 다들 모든 에너지를 노는 일에 쏟아 붓고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귀가하고 있었다. 노는 것도 피곤하다. 하지만 12시간의 숙면을 취하면서, 뇌의 리셋을 경험했다. 


앞으로도 잘 놀아야 할 것 같다. 다른 감각들을 활성화하고, 수다를 떨며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리고, 다른 이들의 시선과 집중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 바닥 아래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수면을 또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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