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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HY Apr 29. 2022

7살짜리 사진작가

 지난 2월, 엄마 아빠를 모시고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여행을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는 주말에도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살림이 빠듯해서 여행을 갈 여유가 없었다. 아빠는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던 것을 많이 아쉬워하셨다. 이제는 가족 여행을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겼을 때는 언니와 내가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다. 결혼을 해서 각자 가정이 생기고 나니 가족들이 다 함께 모이기는 더 어려워졌다.


 우리 남편은 여행을 참 좋아한다. 고맙게도 우리 엄마 아빠를 모시고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렇게 남편이 추진해서 안면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일찍 출발하여 11시쯤 안면도에 도착했다. 숙소 입실 시간까지 아직 많이 남아 근처에 있는 안면도 수목원에 갔다. 꽃을 좋아하는 아빠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2월이어서 꽃은 하나도 없었다. 볼 게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수목원에 들어가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수목원은 아주 운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같이 찍은 사진 몇 장 없다. 이번 여행에서 가족사진을 많이 남길 생각으로 카메라를 가져갔다. 남편이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었는데 아이가 자신이 사진을 찍겠다며 카메라를 달라고 했다. 아이의 목에 카메라를 걸어줬다. 아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아이는 사진을 잘 찍었다. 물론 땅만 찍은 사진, 다리만 찍은 사진, 초점이 안 맞은 사진도 있었다. 그래도 풍경과 사람이 다 나오도록 잘 찍은 사진도 꽤 많았다. 수목원을 구경하는 내내 아이는 우리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아이는 저기에 서봐저기 앉아봐, 할아버지 할머니 저기 앉으세요, 하고는 사진을 찍었다. 꽤 묵직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느라 힘들 텐데도 일곱 살짜리 꼬마 사진작가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아이에게 이제 아빠가 찍어주겠다고 카메라를 달라고 했지만 자기가 찍을 거라며 수목원에서 나올 때까지 아이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로 앨범을 만들었다. 카메라 화면으로 볼 땐 몰랐는데 사진을 인화해서 보니 사진이 정말 잘 나와서 감탄했다. 아이가 찍은 나의 부모님 사진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사진 중 제일 잘 나온 사진이었다.

부모님은 본인의 사진을 찍어본 적이 많이 없으셔서 그런지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찍은 사진에서는 표정이 너무나 좋았다. 엄마 아빠의 눈에는 손주를 향한 사랑이 가득했다. 나와 남편도 그랬다. 우리는 모두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나의 결혼식 가족사진보다 아이가 찍어준 가족사진이 더 마음에 든다. 한껏 꾸민 모습보다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 사진에서는 표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찍어준 사진이 제일 잘 나오나 보다. 그 사람을 향한 내 사랑이 담겨있으니까. 우리 가족에게 최고의 사진사인 아이에게 앞으로도 사진을 잘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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