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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 Hayley Feb 23. 2022

환자도 간호사를 살린다.

어느 간호사의 고백#6 <어느 환자의 칭찬카드>

 2022. 1. 28. 금요일 이브닝 근무 때 일이다. 

휴일에 하도 일해서 처음으로 4일 휴가를 받아서 휴가 내내 부모님 집에 있다가 출근하러 나왔다. 

쉬면 쉴수록, 직장에 나가기 싫은 건 절대 법칙인가 보다. 

오랜만에 부모님 뵈고 잠도 푹 자고 힐링을 제대로 했더니 

일하러 온 이 병원, 병동이 그 어느 때보다 지옥과 같았다. 내 자유를 돌려달라.

우울한 마음을 부여잡고, 이제 막 출근해서 환자 파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선생님이 스테이션에 나오셔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너 혹시 연락받았니? 너 앞으로 칭찬 카드가 접수되었더라."

"네? 제가요? 아니요. 그런 거 받은 적이 없는데요."

이게 무슨 낯선 소리인가? 칭찬카드? 그런 게 뭔지도 감이 잘 안 왔다. 

하지만 나의 직감이 말하기를, 이건 분명히 좋은 징조이다. 

"너 환자분이 너한테 칭찬 카드를 접수했어. 한번 찾아봐봐."

"아 네 알겠습니다."

"축하한다. 선배들도 못 받은 거를. 얘들아, 애가 칭찬카드 받았어~"

 수선생님은 마치 본인이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 보이셨고, 나한테 뿐이 아니라 다른 선배 간호사들에게

이 소식을 널리 퍼뜨렸다. 다들 일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흔한 일이 아니어서인지 별로 반응이 없자,

수선생님은 계속해서 언급했다. 덕분에 나는 괜히 민망했으나 기분이 좋기도 했다. 

수선생님이 나를 이번 기회에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를 내심 대견스러워하신 것 같았다. 


 마침 나의 노티함(사내 메일함)에 여러 메일이 들어와 있어서 열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고객의 칭찬카드가 접수되었다는 소식과 어떻게 보고 답장까지 할 수 있는지의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드디어 이 소식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고, 다소 신나는 마음으로 접수된 내용을 클릭해서 보게 되었다.

 이럴 수가. 실제로 일어났다. 보통 이런 일은 병동에 흔하지 않다. 이걸 독립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신규인 내가 받게 되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내 인생에 역사적인 날이다.  

 

 나는 사실 짐작이 가는 환자가 한 분 있었다. 한 남성 환자분이 입원 오셔서 내가 입원을 받으며 이런저런 히스토리 테이킹을 하며 환자에 대해 여러 가지 여쭈었고, 병동 생활 안내도 해드렸다.

 여느 때와 같이, 늘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환자분이 코뼈가 골절되어서 수술을 할 예정이었는데, 입원이 처음이어서 굉장히 떨려하고, 걱정하고 불안해 보였다. 환자의 입장이 이해는 갔다.

 

 나 역시 몇 달 전에 허리가 너무 아파서 허리에 마취 주사를 맞으러 갔을 때도, 나 역시 간호사임에도 불구하고 겁이 많아서 일하시는 간호사님에게 무섭다며 징징대고 걱정을 한 바가지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분은 수술이고, 입원이니 더욱더 겁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호사인 나 역시도 입원이랑 수술은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환자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는 하나, 코뼈 골절 수술 환자를 한 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우리 병동에서 가장 쉬운 수술, 가장 쉬운 입원 케이스로 치부되는 경우라서, 환자가 걱정하는 게 내 입장에서는 답답했다. 

 왜냐하면 걱정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별로 통증도 호소하지 않고, 잘 있으시다가 수술한 지 5일째에 코에 있는 솜 빼고 잘 퇴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술이 한 번도 잘못된 것을 본 적도 없다.  


 그래서 환자분에게 잘 설명을 해드렸다. 

"환자분께서 입원이랑 수술이 처음이어서 걱정이 많이 되시나 봐요. 불안하실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분 입장에서는 무섭고 떨리시겠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매일 보는 비교적 쉬운 케이스의 수술 이어서요. 다들 잘 수술돼서 잘 퇴원하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제가 100%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 수술 괜찮을 거예요."

"아 그래요? 나는 수술이 처음이라 너무 무서웠는데, 괜찮은가 보네요." 

환자분은 내심 안심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불안했는지 계속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확인하고, 걱정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심시켰다. 말을 많이 해서 평소보다 피곤이 조금 더 쌓였지만, 그래도 환자분이 얼마나 긴장되고 불안한지 내게도 전해져서 마음을 달래 드리고 싶었다. 

 끝내 환자분은 고맙다고 했고, 처음보다 불안이 감소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퇴근을 했고, 며칠 오프를 가지고 나서 오랜만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다른 방 환자들을 보게 되어 그 환자를 까맣게 잊고 있었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환자분이 다가와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번에 감사했어요. 덕분에 수술 잘했어요. 이제 맘이 놓이네요."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저를 기억하시네요!"

"네, 한동안 안 보이셨어요."

"네, 제가 며칠 쉬었고, 이제 다른 방을 봐서요. 수술 잘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네. 덕분입니다. 감사했습니다." 

 환자분은 여러 번 고맙다면서 꾸벅 인사를 하셨다.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감사에 얼떨떨했으며, 같이 감사하다고 했다. 환자분의 그 말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옳은 일을 한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휴가를 얻고 오랜만에 출근을 하니, 환자분이 퇴원하시면서 내게 너무 고마웠던 나머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칭찬카드를 쓴 것이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보통 환자분들은 퇴원할 때 감사하다고 말만 하고 가도 우리는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환자분은 마스크를 써서 다들 비슷하게 보였을 텐데,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내 이름도 어떻게 외어서, 며칠 내가 안 나왔는데, 계속 나를 찾았을 것이다. 직접 감사를 전하려고.

  거기다 보통 이 정도만 해도 많이 성의를 표시한 건데, 나도 존재를 몰랐던 칭찬카드를 내 이름 앞으로 접수를 해주신 것이다. 대부분은 이렇게까진 안 할 텐데, 정말 섬세하고 대단한 성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분의 감사 표시가 나에게는 얼마가 크고 깊게 다가왔는지 아실지는 모르겠다. 

'답변도 잘해주고, 믿음도 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니. 정말 감동이었다. 요즘 출근하기 무섭고, 일하기 싫었는데, 그 마음들이 눈 녹듯이 사르르 사라졌다. 그 어느 때보다 보람을 느끼고, 간호사라는 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칭찬카드 한 줄이 내게는 이 일을 계속해도 된다,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이는 결국 내가 응급 사직이나 퇴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나는 이 일의 가치를 더욱더 느낄 수 있었다. 

 이 분이 내게 감사를 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간호사를 계속해도 되는 건지, 나와 잘 맞는 건지, 버틸 수 있을지 등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간호사 일은 힘들고, 딱딱하고 위계질서가 심한 직장 문화에 응급적이고 정신없는 일터지만, 그 속을 잘 들여다보면 '감동'이 있다. 흔히 '의료진들이 환자를 살린다', '간호사는 백의천사'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간호사만 환자들을 살리는 게 아니다. 환자도 간호사를 살리기도 한다. 우리만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게 아니라, 환자들도 우리에게 힘이 되어주고 우리를 신경 써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 하다 보면 정말 친근한 동네 아주머니, 삼촌, 할아버지 같은 친절하고 선한 환자분들도 많다. 우리의 노동 하나하나의 가치를 아시듯 감사를 전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들이 꼭 감사를 전해서 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그들의 진심이 전해질 때, 나 역시 다시 되살아 나는 것을 느낀다. 

 그로써, 환자도 간호사를 살릴 수 있다. 


<어느 환자의 칭찬 카드>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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