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e Apr 09. 2023

내가 키우던 개도 나를 그리워할까

아니면 미워하고 있니?


내가 사는 동네는 근처에 큰 공원이 있어서, 요즘 같은 봄날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흩날리는 꽃잎조차 재밌어 방방 뛰는 강아지부터 점잖게 주인 발걸음에 맞춰 걸어가는 도베르만까지.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울을 보면 종종 개장수가 이런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선뜻 다가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산책하는 강아지들만 보면 내적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힐끗힐끗 눈짓손짓을 건네곤 한다.


3년 하고 3개월, 인생의 반을 함께했던 슈슈가 하늘나라로 떠나고 한동안은 산책하는 강아지들만 봐도 슈슈 생각이 나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근데 이제는 다른 강아지들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는 나를 보며, 새삼 시간이 가진 힘에 감탄했다가 또 슈슈가 하늘나라에서 지켜보며 질투하고 있을까 봐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할머니의 반려견

반년 전쯤, 집을 나서는데 파지를 수거하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며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대화상대로 보이는 사람이 없어 뭐지 싶었는데 유모차 안에 흰둥이(가명)가 할머니를 바라보며 얌전히 앉아있었다. 누군가가 버린 듯한 낡은 유모차였지만, 흰둥이가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궁리한 흔적이 보였다.


그 뒤로도 종종 길을 지날 때면 할머니와 흰둥이가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할머니가 폐지를 모을 때는 얌전히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출발하면 느린 속도에 맞춰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이뻐 보였다. 아래 사진에 찍힌 흰둥이는 경계의 눈빛이 가득하지만 그건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는 걸 들켰기 때문이다. 먼발치에서 바라봤을 때, 할머니를 바라보는 흰둥이의 눈빛은 애정으로 가득했다.


하루종일 할머니와 즐겁게 산책하고 집에 가서도 할머니 곁에서 함께 할 흰둥이에게 할머니는 반려인일 테고, 할머니에게 흰둥이는 반려동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얌전히 자고 있다가, 불청객이 다가오자 경계하는 흰둥이. 미,, 미안


나의 애완견

내가 중3이 되던 해에 슈슈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내가 일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해 1월 하늘나라로 떠났다. "정말, 엄마 내가 산책도 시키고 똥도 다 치우고 할게. 제~발"이라는 아들들의 뻔한 거짓말에, 한 달을 고심하다 펫샵에서 데려온 강아지다. 귀엽고 앙증맞은 생명체를 보면서, 나와 남동생은 너무나 즐거워했고 함께 놀았다. 다만, 어디까지나 인간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렇고, 태어난 지 3~4개월 된 강아지는 처음 보는 어린 인간들과 놀아주느라 어지간히 힘들었을 테다. 성인 허리 정도되는 식탁에서 점프하라고 외치는 어린 주인들 때문에 원치 않는 담력테스트도 하고, 잘 자고 있는데 베개로 쓰겠다고 큰 머리통을 들이대며 다가오는 주인 때문에, 헤어진 엄마 아빠를 그리워할 새도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고, 나는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고, 유학을 가고, 취업을 해서 일본으로 갔다. 썩 맘에 드는 주인은 아니었겠지만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었고, 가~끔 가다 달라진 체취와 함께 돌아와 알아채는 데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을 거다. 돌아와서는 며칠 있는 것 같더니, 다시 어디론가 휙 떠나버렸다.


나에게 슈슈는 혼란스러운 사춘기부터 첫 이별의 슬픔, 대학 입학의 기쁨, 군대 시절의 쓸쓸함, 취준 때의 막막함, 일본 생활의 외로움까지 오랜 기간 함께 해준 반려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슈슈에게 나는 반려인이었을까? 내가 슈슈를 반려견이라고 생각한다고 느꼈을까? 아니면 지 힘들 때만 와서 질척이다 조금 이뻐해 주다 훌쩍 떠나는 그런 미운 존재였을까? 


파지를 수거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애정어린 흰둥이의 눈빛을 보며, 염치없게도 가끔은 슈슈도 하늘나라에서 나를 그리워해주기를 소망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日本202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