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용해진 인간을 어떻게 다루는가. 플랜75.
내 첫 직장, 파나소닉.
이곳에 입사하고 반년 가까이 여러 연수를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조그만 전파상 같은 파트너 업체에서 2달 정도 진행했던 '점포연수'였다.
근처에 사는 고객에게 연락이 오면, 작업복 차림에 소형 트럭에 타고 이동.
전구를 가는 사소한 일부터 에어컨 교체설치까지, 정말로 다양한 일을 했다.
당연히 일본에서도 가전제품은 대형양판점이나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게 저렴하기도 하고 간편해서,
이런 가게를 이용하는 건 90% 이상이 70대 이상 고령자들이었다.
잘 관리된 마당이 있는 오래된 주택부터, 사람이 사는 게 맞나 싶은 낡은 시영아파트까지.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 같이 오래된 사진과 가구들. 떠들썩한 TV 소리와는 대조적으로, 쓸쓸해 보이는 공간.
깊이 파인 주름과 지쳐 보이는 모습. 그렇지만, 마실 걸 챙겨주면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평소 또래 일본 친구들의 자취방에 놀러 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내가 알지 못하던 일본의 모습을 엿본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마존이나 요도바시에서 사면 더 싸고 빠른데, 굳이 왜 여기서 사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두 달 정도 다양한 노인들의 집에 가보니 결국 사람이 그립고, 어떤 형태로든 관계나 유대를 가지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점포연수' 이후에는 다시 오피스로 출근했고 딱히 고령자에 대해 생각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한 '플랜75'는, 7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죽을 권리를 제공하는 사회제도가 가결된 일본 사회를 다룬 영화다. 바꿔 말하면, 돈도 없고 써먹을 데도 없는 노인들은 민폐이니 빨리 죽어달라는 사회와 정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알려진 츠츠이 야스타카 씨가 쓴 "인구조절구역"에서,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서로 죽이고 살아남은 1명만 수명대로 살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꽤나 쇼킹했던 기분을 느낀 게 10년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10년"에서 다뤄진 동명(Plan75)의 단편을 본 게 5년 전.
그 사이, 저출생고령화 문제는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졌고 우리 부모님도 환갑을 맞이했다.
'플랜75'에 나오는 78세 여성 '미치'는 홀로 시영아파트에 살면서 호텔 청소일을 하며 근근이 살고 있다. 하지만, 동료가 업무 도중 다치면서 비슷한 나이라는 이유로 명예퇴직하게 되었고 살던 아파트에서도 나와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새로운 일을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을 해보고 이사를 위해서 부동산도 전전하지만 다 나이 때문에 거절당한다.
그녀는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에 쓸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쓸쓸함을 나눌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고립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때, 죽을 권리를 제공하는 국가 서비스 '플랜75'를 떠올리게 된다.
목요일 오후 5시 상영인데도 꽤나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러 오셨다. 중간중간 한숨이 들렸다.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가상의 일본사회를 다룬 영화지만 현실의 한국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고, 쓸모없어지고 대체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이가 많든 적든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불쾌하지만 외면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사물화 되고, 생산성의 높고 낮음에 의해 다른 인간 혹은 솔루션으로 대체된다. 육체적인 능력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능력도 떨어지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사회에서 배제되며 문제시된다. 그렇다고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떤 직종에서 일하든, 이러한 논리 하에서는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
효율을 논하기 전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야 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