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한 Nov 12. 2024

천지불인과 변리사

천지불인과 변리사

얼마 전 아들이 변리사 시험에 합격했다. 오랫동안의 숙원이 이뤄진 셈이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엄청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수험준비에 전력을 투구하고 정진했던 결과 얻은 귀중한 성과였다. 지난 주말에 아들이 집에 왔다. 온 가족이 함께 축하파티를 벌였다. 와인 한 잔 나누는 식사자리였을 뿐이었지만 감개무량했고 천우신조를 얻은 듯 기쁨 가득했다. 합격 축하금으로 금일봉을 주었다. 아들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어려운 변리사 시험을 합격했다. 2차 시험만 5번을 보았고 1차시험도 5차례 보았다. 2차실험은 네 과목에 대해 이틀 동안 시험을 치는 시험이다. A3용지 16장을 두 시간 동안 채워야 하고 써내려 가야 하는 시험이다. 매년 200명씩을 선발하는 시험이다. 아들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는데 자연과학에 관한 전공을 한 것도 아니어서 더욱 어려움이 있었다. 민사소송법, 민법, 특허법 등 법률 과목은 접해본 적도 없는 문외한이었다. 2년전부터는 대학동에 오피스텔을 얻고서 오로지 변리사 시험에 전력을 다했다. 아들은 그렇게 영민한 인재에 들지 못했다. 어린시절에는 초등학교시절 전교부회장을 하기도 하고 제법 똑똑한 축에 들었으나 강남으로 이사해서 보니 평범한 중위쯤의 성적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중2 시절에 서초동으로 이사해서 아들 공부를 제대로 시켜보려 했으나 이미 시기를 놓친 셈이었다. 한 반에 34명중 절반이 영어를 만점 받는 학교였으니 강남의 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어린이집, 유치원시절부터 강남에 터를 닦은 이들과 경쟁에 나서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갈 때도 지방으로 가야 하는 신세였었다. 다시 반수를 거쳐 수도권에 진입해 집에서 통학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2017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아내의 권고에 의해 변리사 시험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1차시험을 응시하기 위해서는 일단 토잌750점을 받아야 응시가 가능했다. 그렇게 1차 시험을 쳐서 통과를 한 것이 3년이 걸렸다. 2020년이었다. 그로부터 꼬박 4년 6개월이 흐른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거의 아들이 패닉상태였었다. 당연히 합격권이라고 확신했었는데 낙방한 것이어서 더욱 실망감이 컸다. 한달여를 마음정리를 한 후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지난해 낙방을 한 후에는 공기업이나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도 고민했었는데 그룹스타디를 같이 했던 작년도 합격한 선배의 조언이 큰 힘이 되어 다시 도전하게 되었다. 올해 2월에 다시 1차 시험을 응시하고 다행히 1차를 통과하고 본격적으로 2차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가족은 멀리서 마음속 응원을 하는 것이 유일한 지원책이었다. 간혹 한 번씩 오피스텔 근처에 가서 불고기 백반의 식사를 한 번씩 사주는 것이 관심을 표명하는 방식이었다. 5개월 후인 77월 말 금요일과 토요일에 2차 시험을 치렀다. 시험장소는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신길중학교였다. 시험을 마치고 우리 내외는 아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작년도에는 아내가 서울시 교육청 교육장이었는데 그 당시 같은 교육지원청의 국장 아들도 변리사 시험을 쳤었다. 그리고 같이 낙방을 했고 국장 아들은 진로를 바꿔 공기업 쪽에 취업을 했다. 또 아들과 같이 수험준비를 해서 1차를 처렀던 친구는 1차 시험에서 낙방해서 내년을 기약하고 있는 형편이다. 시험을 치른 후 3개월이 흘러 10월 30일이 되었다. 맨먼저 합격 소식을 알게 된 이는 아내였다. 인터넷으로 접속을 해서 합격을 확인한 것이었다. 나는 손자를 어린이 집에 등원시키는 와중이어서 정신없었던 시간이었다. 처남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2013년에 큰아들이 보험계리사에 합격했을 때에도 처남이 합격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묘한 일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참으로 자랑스러웠고 그렇게 기쁠 수가 없는 소식이었다. 우리내외는 부처님 불상에 제물을 차려두고 합격통지서를 놓고 삼배를 올렸다. 아내가 다니는 선원의 스승님은 조상님의 돌봄이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소중한 말씀이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나신 모친의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기뻐하시고 축하를 해 주셨을 어머니셨다. 부친께 전화를 드렸더니 축하금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렇게 칭찬을 해주셨다. 감사할 일이었다. 천지불인이라는 말이 있다. 자연은 결코 인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인간사에 해당되는 것이지 천지에 속하는 자연에서 인이라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시 천지는 결코 무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읍해서 답을 주신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을 당하고 사고를 당하고 병고를 겪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하늘이 무심할 수 있고 어떻게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자신에게 문득 던져보는 질문에 나는 불행한가 또는 나는 왜 불행한가 라는 질의를 할 때가 있다. 인생살이에서 끊임없이 자문해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자신의 현재 상황과 처지를 관조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살펴보아야 하리라. 자기자신은 얼마나 많은 죄업을 지었고 그 죄업이 화가 되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인생살이를 고달프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반추해봐야 할 것이다. 항상 인간사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자기 자신을 탓하고 모든 현상의 결과에 관해 자신으로 말미암은 부분에 관해 반성하고 참회하며 뉘우쳐야 할 부분이다. 영국의 유명한 저술가 사무엘 스마일스는 자신의 저서 자조론에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동양식으로 해석하자면 진인사대천명 정도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스스로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과실과 열매만 얻고 바라고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하는 것은 과욕인 셈이다. 아들의 변리사 합격을 축하하며 그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화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