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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nie et Travis May 02. 2024

클라우디 브룩 지구 모험 1


  말라 바랜듯한 핑크를 너의 입술 위로 데려올 것. 그런 임무를 수행하러 돌아다닐 것. 그리고 입술뿐만 아니라 너 전체를 향해 귀환할 것. 이 약속은 곧 나의 영혼이다. 이 약속이 약속의 내역을, 그리고 어떤 무명의 모험심과 애틋함을 곧 나 자신으로 만든다.

  나는 출발했다. 나는 귀에 꽂는 약간 칙칙하게 하얀 조약돌 한 쌍을, AKG의 후예를 이미 준비했다. 이것들이 약 한 시간 정도, 아무리 묵직해져 와도 힘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할 그 노후한 걸음들의 반절을, 아니 반의 반절만이라도 부축해 주면 어떨까.

  해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직전의 푸르름. 흔히 아는 직로는 긴장 없이 분방한 발길을 제한한다. 나는 결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정처 없이 다닐쏘냐. 나는 흡사 버려진 듯 구속 없는 게 아니니까. 내가 우두커니 앉아 있을 장소도 제한된다. 나는 잠시도 앉아서 쉬지 않을 거야.

  첫 번째 역사에 가까워졌을 때는 아주 성공적인 선곡이 나의 반응을 반긴다. Air. You make It easy. 선율은 형체와 시간과 공간이 부족한 실존 속에서 우리를 그린다. 색깔이 듬성듬성 입혀지자 홀로그램처럼 흐늘거리는 입체감. 그러니 신체가 멜로디적인 힘에 잡혀 있을 때 사실 관계는 무시해도 좋다. 나는 실로 힘차게 걷고 있지만, 음이 안고 있는 나는 앉아 있기도 하고 누워 있기도 하며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급기야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 극을 초대한다. 공간과 시간대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오 케니 장님, 여기서는 당신이 품질적으로 — 말하자면 이용가치 면에서 — 최상의 아티스트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질투심 많은 왕을 맡아주오. 오전 10시 예배를 마친 시간이면 어떨까요, 왕이 결정하세요. 아니 Music make It easy, 선율이 결정하겠소. 우리들 중 한 명은 피아노를, 한 명은 클래식 기타를 담당하고 싶다. 피아노가 오르간이라면 더 좋겠는데. 신시사이저는 기타 코드로 뭉개놓아야지. 이제 노래는 우리들 중 누가 불러도 좋다. 누가 됐든 감미로우면 된다. 물론 감미롭지 않을 리 없다. 운명이 언제 어떻게 선곡하더라도, 상상은 너무 쉽고 간단하다. 보편적 감흥의 재현은 무분별한 극의 공통된 목적인 것이다. 좋은 음악과 밤을 맞은 도시와 갑자기 야릇해진 불빛과 순수하고 가련한 감흥. 하나의 단결이 실재를 해체하고, 실재의 권위마저 해체한다. 동시에 증거들도 검은빛 속으로 떨어지면서 해체된다. 극의 증거들 말이다. 그렇다, 당연히 나는 노래도 못 하는 데다 악기 하나 다룰 줄 모르는데, 아무리 곡의 중도에서 자꾸 도입부로 되돌려도, 어차피 곡은 이내 끝나버리는 것이다.

  두 번째 역사를 지나게 되었다. 먼저 나의 밤이라고 여기려다 밤의 나로서 밤의 조건을 관찰한다. 이 조건들 없이 오늘 내게 밤이 있었을까. 나는 조종당하기 원치 않으면서도 여간해서는 창조적일 수가 없다. 도시에 복종하는 하천은 불빛들을 공중에 띄운다. 밤의 유흥을 보조하지 않는 빛의 영원성 속으로 통과해 간다. 이것은 밤의 유흥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의 목격담이다. 지도를 보기 시작했다. 흔히 아는 직로가 아닌 부지의 직로로 통과해 간다. 이것은 밤의 유흥이 필요치 않은 사람들의 필연이다. 결코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시간에 관한 한 어떤 류의 손실도 피하겠다고 아까 나는 말했다.

  호수공원의 외각을 따라 걷는다. 아주 조금, 모든 것이 지체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딱 좋게 빠를 지도. 앞으로 30분이면 될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껐다. 지금으로서는 규정된 활동에 대한 기다림과 실행 말고는 남은 게 거의 없다. 발은 기계적으로 몸체를 이동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30분이 도입시킨 강호들의 사막이나 나비고 없이 거니는 파리 근교 따위를 몰라보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음악을 꺼버린 에티튜드의 콘셉트, 치러야 할 일이 전부라는 식의 삭막함은 일시적인 효율이라 할지라도 전전긍긍한 상념을 극복하는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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