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터슨>>, 2017
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우연히 친구들을 따라간 어느 극장에서였다. 극장을 나서며 이런 감동적인 영화를 보게 해 준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데, 희한하게도 그들은 상영시간 중 대체로 잤다고 했다. 이럴 수가! 나는 이 영화를 잊지 못하고, 얼마 후 다시 집에서 영화를 찾아 플레이했다. 무슨 영화냐고 같이 보자던 남편은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코를 골았다. 이상하다, 이 영화 나만 재밌나? 할 수 없이 나는 이 영화를, 혼자서 두 번 더 보고, 그리고 또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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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에 사는 버스운전사 패터슨은, 아내 로라와 함께 산다. 그런데 이 커플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른 데, 이상하게도 그 점이 내게 큰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패터슨은 시를 쓴다. 반면 로라는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연주하고, 컵케익도 굽지만, 시는 쓰지 않는다. 패터슨은 아침형 인간이다. 알람 없이도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나면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로라는 그때 한창 꿈 속이다. 패터슨에게 비몽사몽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로라는 다시 잠들어버린다. 그럼에도 그녀의 꿈은, 하루 종일 패터슨과 함께 한다. 예컨대 그녀의 쌍둥이 꿈에 대해 들으면 그의 눈에는 쌍둥이들만 보이고, 고대 페르시아 꿈에 대해 들으면 운전하는 내내 페르시아 음악이 울려 퍼진다.
둘은 성격도 완전히 다르다. 패터슨은 아직(2017년) 핸드폰도 없다. 그래서 버스 운행 중 사고가 났을 때 회사에 빨리 연락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패터슨은 전화기를 들고 다닐 생각이 전혀 없다.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반면 로라는 핸드폰에 노트북에 아이패드까지, 그런 모든 것을 사용하길 좋아한다.
그런 게 아무것도 없는 패터슨은 여전히 노트에 시를 쓰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로라는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자신의 취향에 맞춰 칠하고, 노래를 연습해서 잘 나가는 컨트리 가수가 되고자 하며, 자신이 구운 컵케익이 겨우 하루 장터에서 대박이 나자, 바로 컵케익 부자를 꿈꾼다. 그런 그녀는 패터슨 역시 시인으로 성공할 게 분명하니까, 노트를 복사하고 세상에 공개하자고 매일 그를 설득한다. 패터슨은 이번 주말에 꼭 복사해 놓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한다.
드디어 주말. 동네 장터에서 컵케익이 대박 난 로라는 신이 나서 돌아온다. 그녀는 조용히 지하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던 패터슨에게 외출하자고, 장터에서 번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극장에도 가자고 제안한다. 패터슨은,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가 그러자 하면 그러고 싶어지니까, 기뻐하면서 함께 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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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이 그들의 집에서는 그들과 동거하는 존재가 남아 사고를 치고 있었으니, 그는 바로 불도그 '마빈'이다. 산책은 날마다 패터슨이랑 하지만 로라말만 잘 듣는 마빈은, 자기만 집에 남겨둬서 심통이 났는지 아니면 로라를 독차지한 패터슨이 얄미웠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패터슨이 흘리고 간, 시로 가득한 (항상 지하실에 숨겨져 있던) 노트의 냄새가 너무 낯설어서 그랬는지, 글쎄 패터슨의 비밀 노트를 물어뜯어 완벽하게 산산조각 내버렸지 뭔가! (그때 아 내 마음도 산산조각 나는 것 같았다!)
전혀 예상 못한 사건에 패터슨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반면, 로라는 패터슨보다 더 슬퍼하고 패터슨보다 훨씬 더 마빈에게 화를 낸다. 그러자 패터슨은 그녀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괜찮아, 그냥 물 위에 쓴 단어들일 뿐이야."
그리고… 다시 새로운 월요일이 돌아오고, 영화는 끝난다. 하지만 시인 패터슨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하루 종일 같은 노선을 따라 버스를 운전하고, 저녁에 돌아와 로라와 밥을 먹고, 마빈과 산책을 나가 동네 바에 들러 한 잔 하는 삶. 그 삶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에서 또다시 단어들이 길어 올려지고, 새로운 텅 빈 노트 위에 쓰일 것이다. 마치 물 위에 쓴 단어들처럼. 물 위에 쓴 단어들은 쓰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그리하여 오직 쓰는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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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패터슨과 로라. 그들에게 유일한 감동적인 공통점은, 서로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이다.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땐, 참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운 커플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영화를 거듭해 볼수록 두 사람의 완전히 다른 면은 한 사람이 지닌 의식과 무의식, 외면과 내면, 육체와 영혼 등으로 불릴 수 있는, 한 사람 안의 완전히 다른 면이 아닐까 싶어진다. 둘은, 융의 용어로 말한다면, 완전한 조화를 이룬 대극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