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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RTh on view Jun 16. 2024

조용히 뜨겁게 빛나는 구로구에 건배를

구로의 지역성을 새롭게 읽어낸 전시

서울의 남서부에 있는 구로구는 탁월한 입지 조건으로 1960년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로 조성되어 역사상 유례없는 한국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끈다. 도시 외곽의 근교농업 지역에서 벗어나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한 "구로공단"에 전국 각지에서 인력이 대거 유입됐고, 전성기로 여겨지는 1978년에는 무려 11만 4천여 명이 근무했다. 타지에서 한뜻으로 모인 이들을 잠잠히 품었던 구로공단은 섬유, 의류, 전자 제품 등 경공업으로 이끈 이 한국 산업화의 초석으로 1971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국가 전체 수출액 10% 이상을 달성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 구조가 중공업, 정보통신 산업으로 확대되며 시대적 변화를 급격히 겪게 된다. 오늘날 구로디지털산업단지(G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서울문화재단의 지역문화 진흥사업 <N개의 서울>의 배경이 되었다. 서울 25개 자치구가 지역문화 생태계를 활성화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구로문화재단에서는 지역성에 기반해 구로의 역사와 가치를 새롭게 조망한 <조용히 뜨겁게 빛나는 우리의 불빛에 건배를> 문화예술 프로젝트가 5월 24일 막 올랐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한국의 산업화를 이루어 낸 수많은 반짝이는 작은 별들을 기억하고, 시대의 변화를 묵묵히 겪었던 구로를 살펴본다.


<조용히 뜨겁게 빛나는 우리의 불빛에 건배를> 문화예술 프로젝트의 <세공> 전시 전경 Ⓒ 오팔 스튜디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시 <세공 細工>에서는 산업화를 이뤄낸 주역들이 과거 삼삼오오 찾던 구로공단 패션의 거리에 주목한다. 구로시장 양품점 거리, 비단길의 포목점 거리, 남구로역 일대의 의상실 거리는 남대문과 동대문 다음으로 손꼽히는 패션 거리로 당시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공단 근로자들의 월급날 혹은 기숙사 외출날이 되면 패션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구로시장은 밀집된 공단에서 고단하게 일하던 젊은이들에게 쉼과 위로의 공간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콜렉티브 '오팔 스튜디오(Opal Studio)'는 구로시장에 여전히 남아있는 패션 거리에서 의류와 신발을 구입해 스타일링한 결과물을 선보인다.


기획자, 스타일리스트, 패션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이너, DJ 등이 모인 오팔 스튜디오. 이들이 참여한 전시는 2023년 겨울, 을지로 엔에이 갤러리에서 선보인 오팔 스튜디오의 <서울사람> 팝업 스토어 프레젠테이션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가장 서울다운 매력을 품은 을지로에 둥지를 틀고 있는 오팔 스튜디오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 믿는 것들을 모아 새로운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 패션, 음악, 미술 등 모든 예술이 공명한다고 생각해 전통과 현대성, 키치함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공존하는 "도시의 부조화의 조화"를 주제로 삼았고, 한계를 두지 않은 조화로움을 서울에 대입한 사진전과 스타일링을 한데 보여줬다.


작품 <패치워크 학사모>Ⓒ 오팔 스튜디오


이번 <세공> 전시에서는 창의적이며 실험적인 모자 디자인을 선보여온 '햇쓸까(Hatsseulka)'와 함께했다. 과거 구로공단의 해외수출공업단지가 봉제공장, 가발공장, 크라운전자공장 등으로 구성되었음에 착안한 것이다. 라디오 안테나, 가발, 레이스처럼 구로공단 근로자들과 밀접했던 주요 수출품을 오브제로 만든 헤드피스 작업을 통해 지나간 시대를 빛낸 공단 근로자들에게 헌정하는 마음을 담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야학을 다녔던 이들의 열정을 담은 학사모는 청바지 소재로 만들었으며, 옛 영어 교과서 표지를 고스란히 자수로 새겼다.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마네킹 없는 착장 위 나비 헤드 피스는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었으나 현실은 그럴 수 없었던 "여공"의 꿈을 표현하고 섬세한 존경을 표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그려내는 '에이더블유이(awe)'는 도심 속 시장 골목에 신비한 식물들로 채워낸 의외의 공간을 제안하며 작은 숲을 만들어냈다.


공식 포스터 Ⓒ 구로문화재단


프로젝트에는 다양한 분야의 협업자가 함께 뜻을 모아 참여했다. 유쾌하면서도 독창적인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건축·디자인 스튜디오 '모토엘라스티코(MOTOElastico)'는 지역 문화와 상업의 중심지로 기능한 구로시장 한복판에 커뮤니티 공간 <GUROCK&ROLL(구로큰롤)>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허브의 향을 풀어내는 '히토(HITO)'가 나비 책갈비에 담은 향을 맡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비씨지북스'의 북 큐레이션 <열매클럽> 책들과 오팔 스튜디오가 큐레이트한 음악을 들으며 구로에 아로새겨진 한국산업화의 기록, 세월과 정서를 느껴볼 수 있다.


그 외에도 구로 고메 스트리트 프로그램을 통해 구로공단 시절 대표적인 먹자골목이었던 '구로시장 먹거리타운'을 소개한다. 자연, 사람, 생명의 조화를 이룬 미식을 표방하는 '아워플래닛(our planEAT)', 정이 듬뿍 담긴 오랜 손맛의 '정희순(5호집)', '현영이(내일 또 내일)' 등 포차 셰프가 참여해 특별메뉴를 소개한다. 요즘 각광받고 있는 문래동에서도 가까우니 참고하시길.


장소 구로시장 영프라쟈 G밸리 G타워

기간 2024.05.24 - 2024.11.30


엘르 코리아 닷컴 #요즘전시 칼럼(2024.06.03 게재) 기고를 위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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