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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물 Dec 07. 2024

사모곡(思母曲)으로 그린 분첩 -황미정 작가(2)

어머니의 추억

사진; 작가 페북에서 가져옴


전시공간에 들어서면 향긋한 분 냄새가 난다. 어머니 품에서 나던 그 향긋한 내음이 그곳에서 흘러나온다. 꽃 의자엔 분첩이 올라 있다. 꽃 의자 다리는 곡선을 자랑하며 어머니의 종아리를 닮았다. 의자 맨 위와 분첩엔 왕관이 씌워져 있다. 꽃으로 만들어진 의자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나비가 난다. 화면 전체가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색감이 그렇고 대상이 된 사물들이 그렇다. 연분홍빛 색감의 꽃에 진주가 꽃술로 놓여 있다. 꽃의 형상이 보석으로 빛난다. 분첩이 주인공인지 꽃이 주인공인지 진주가 주인공인지 나비가 주인공인지 혼란스러울 뻔 한데 가지런히 의자 위에 올려진 분첩은 그 역할을 다한다.


이 작품의 키 포인트는 의자다. 작품 전체를 가득 채운 의자는 조연출이지만 분명 주인공이다. 분첩을 더욱 빛나게 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분첩은 여인의 물건이다. 그것도 드러나지 않는 여인의 깊숙한 공간에 존재하는 물건이다. 그런 분첩을 황미정 작가는 과감히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드러남에 이야기를 담았다. 분첩은 여인 중에서도 할머니와 누이의 모습이 아닌 어머니의 상징이다.


지금 어머니는 꽃 의자에 앉아 있다. 당신이 썼던 분첩의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잡아 받쳐 든 채 미스코리아가 되어 미소를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왕관을 쓰고 있다. 나 예뻐요? 한다. 나비는 분첩과 어머니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화사한 날개 짓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일깨운다.


어머니는 그리움이다. 여기에 계시든 다른 곳에 계시든 그 존재 자체가 나의 삶의 상징이다. 울컥 나의 어머니가 그리워진다. 이승의 삶에서 결코 꽃 의자에 한 번도 앉아 보시지 못했지만 지금은 진주알 박힌 꽃 의자에 앉아 왕관을 쓰고 제대로 된 분칠 한 밝은 모습으로 계시리라. 어머니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


작가는 어머니의 분첩을 통해 그리움과 사랑, 잊혀가는 아쉬움을 잡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화려한 분첩의 세계에서 공허한 마음을 채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뿐이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만 그 속에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그림을 보면서 자신의 심장이 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분첩이라는 용기 자체는 새로운 단어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머니의 그리움이 아닌 예쁜 분첩으로 내 미모를 더 빛내줄 수 있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아련한 나의 어머니의 의자는 공주의 의자가 되고 어머니의 영혼의 고리인 나비는 멋진 이성을 찾아 만나게 해 줄 인연자가 되리라. 힘들고 지친 시대의 청년들이 아름다운 곡선을 지닌 꽃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자신의 삶은 한층 깊어질 것이다.


성공이라는 이름도 성장의 아픔도 내가 앉아 있는 의자와 왕관 그리고 삶을 더 멋지게 꾸며줄 분첩 하나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분첩은 지난 시기의 물건이 아니라 나와 어머니,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존재다.


* 20180623 전시장에서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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