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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거야 Mar 25. 2023

반짝이는 것들

반짝이는 것들


 아이들은 잠이 많은데 나는 유독 잠이 많은 아이였다고 구전으로서 내려온다. 물론 그 입(口)의 주인공은 우리 엄마와 아빠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잠이 많은 것은, 특별히 아침잠이 많은 것은 나의 태생이 그렇기 때문이다.(라고 변명을 해 본다.)

 

 내가 오래도록 낮잠을 자는 동안 종종 오빠는 잠이 든 척 연기를 하고는 몰래 빠져나와 혼자서 나가 놀았다. 우리를 재우다가 함께 잠들었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오빠를 찾으러 다니고는 했다. 그중 영순위는 동네의 하천이었다. 무등산 어느 골짜기에서부터 구불구불 내려오다가 우리 동네를 지나는 냇물은 광주천으로 향했는데 어른들은 그저 냇물이라 하지 않고 광주천, 혹은 하천이라고 불렀다. 그 냇물은 가물 때에는 다 말라버리는 듯했다가 장마나 태풍 때에는 범람했다. 언젠가 큰 태풍의 영향으로 불어난 하천에 우리 동네가 물에 잠기기도 했다. 평상시의 하천은 동네 초등학생들의 핫플레이스였고 초등학생이 된 오빠는 동네 형아들을 좇아 무서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하천을 보는 엄마와 아이

 엄마의 손을 잡고 높지 않은 둑 위에서 하천을 바라보면 하천의 물결은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오빠를 찾느라 엄마의 애는 타는데 나는 내가 왜 하천에 나왔는지를 잊어버리고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밑으로 내려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엄마는 늘 하천으로 내려가는 일에는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것은 혹시라도 하천으로 내려가는 일을 익숙하게 받아들일까 봐서였을 것이다. 하천은 누군가의 목숨을, 특히 나같이 어리숙한 아이의 생명을 쉽게 앗아가 버리기도 하니까. 엄마는 그런 노심초사로 오빠를 찾고 있었다. 오빠는 대개 하천 어딘가에 있었고 또는 공터에서 형아들과 구슬치기 같은 것을 하고 있었고 온 동네를 뒤져도 없으면 개구리를 잡으러 큰길을 건넌 것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오빠는 엄마에게 많이 혼났다. 그럼에도 노는 것에 대한 의지가 굳건했던 개구쟁이는 결국 하천의 둑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시골에 잠깐 다니러 가서는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구급차에 실려 갔다. 오빠로 인해 이러저러한 시련을 겪으며 생긴 미담은 또한 구전으로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다. 


 동네에는 빨래터가 있었는데 많은 양의 지하수가 솟아 흐르는 곳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빨래를 하기 위해 빨래터를 이용했다. 거기에는 우리 엄마도 있었고 윤희 엄마와 길호 엄마도 있었다. 하천은 빨래터와 매우 가까이에 있었으므로 나는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둑 너머로 하천을 바라보았다. 해 질 녘의 하천은 유독 더욱 반짝거렸고 여름의 하천에서는 검은 잠자리가 날아왔다. 겨울을 지내고 나간 하천에서는 작은 풀잎들과 이제 막 움이 트는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사실 나뭇잎들과 들풀과 들꽃들은 언제나 반짝거렸다. 햇빛이 내리쬐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그것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빛을 쏟아냈다. 

 하천의 건너편에는 무섭게 깎아지른 절벽이 있었는데 절벽의 단면에는 커다란 암석이 그 속내를 반들반들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낮 동안은 그저 그렇게 있다가 달밤에는 달의 빛을 받아 퍼런빛을 번쩍 거렸다. 그런 모습은 슈퍼에 가는 길에도 고개만 돌리면 볼 수 있어서 저녁에 슈퍼 가는 길을 따라나설 때면 늘 그것을 외면하고 나와 동행하는 어른의 옆으로 꼭 붙어서 걸었다. 그 암석의 기괴한 번쩍임과 암석 주위 숲의 검은 그림자는 무엇이라도 만들어 낼 것 같았다.

 

 어느 날 저녁 엄마를 따라 슈퍼에 갔다가 어떤 아주머니와 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몰래 듣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의 말로, 어느 날 밤에 이 길을 지나면서 하천을 보는데 어떤 빛이 이리저리 꾸물거리며 하천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아주머니와 엄마와 하천을 번갈아 보며 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래서 그것이 뭐였는데요?” 엄마가 묻자 아주머니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어 “비암.”이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비암. 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뱀이 물가를 얼마든지 다닐 수는 있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왜 그리 무섭게 들렸는지 모른다. 아마도 어두운 하천과 어스름한 달빛을 받아 간간이 보이는 물결과 물의 소리와 퍼렇게 빛나는 절벽의 암석이 나에게 환상을 불러일으켰는지 몰랐다. 어둠 속의 의뭉스러운 물이 어떤 유혹으로 뱀을 불러들이고 뱀은 물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는 빛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닌다고 생각되었다. 낮에는 천진하게 반짝이면서 맑게 흐르는 하천은 밤이 되면 어둠의 기운을 받아 그 속에서부터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두운 음모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 음모 때문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었지만 나는 안전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엄마와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나는 언제나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두운 곳에서 도사리는 공포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빛 가까이에서는 차단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빛 뒤로 숨어 세상의 공포를 몰래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공포는 어린 나에게 세상을 향한 의문을 던져 주었다. 세상을 향한 의문은 세상을 더욱 알아보고 싶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 동안 위에서 흙 놀이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밑에서부터 나를 불러 확인했다. 그러면 나는 얼른 대답하고는 돌로 만들어진 계단을 타고 내려가 엄마 옆으로 쪼그리고 앉았다. 빨래터에서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르는 맑은 물이 색색의 조약돌 위로 흘렀고 아줌마들은 무슨 이야기에든 깔깔대고 웃었다. 엄마는 행복했고 나의 세계는, 행복한 엄마 옆에서 단조롭고 평화로웠고 세상을 향한 의문에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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