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적 표현의 이해 (연습)
2개의 "... 정반합" 습작에 대하여
"트리의 정반합"은 쉽게 쓰여졌다. 표현하고자 하는 장면은 정적이고, 특수하고, 발견되었으며, 변화는 내면에서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완전한 제어가 가능했고, 불완전한 묘사로도 충분했다.
반면, "눈송이의 정반합"은 목격한 장면으로부터 쓰여졌다. 장면은 동적이고, 보편적이다. 간밤에 함박눈이 펑펑 와서, 나뭇가지에 두텁게 쌓인 눈송이들이 돌개바람에 벚꽃처럼, 혹은 목련처럼, 눈을 다 쏟아내고 난 뒤 파랗게 개인 겨울 하늘을 가득 채우며 한 템포로 흩날리는, 사진으로 찍어 남기는 것조차 어려웠던 그 단 한 순간이 주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묘사에 있어 내면의 변화나 의미부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고 (이것은 아마도 실력 부족으로) 어긋나는 언어들을 힘으로 끼워맞추기에 급급했다. 써 놓은 장본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솔직히 브런치 화면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맘에 안 든다.
내가 이처럼 뻔한 것들을 표현하기 힘겨워함은 아마, 내 글은 내면의 변화, 감흥 혹은 그 어떤 유사성, 특기할 만한 어떤 장면을 예쁘거나 재밌는 말로 기록하는 데 집중했고,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얄팍하지만 괜찮게는 쓰여진 "트리의 정반합"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공부 찔끔 해서 써 보면, "눈송이의 정반합"에서처럼, 포착하고자 하는 장면이 살아있으면 살아있을수록, 그 안의 자유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한 눈에 딱 읽어지도록 전달하는 것은 어려워지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제한된 2차원 줄글의 메모리 안에, 정물이 많은 회화 하나와 그 변화까지 토탈 3차원(평면적인 시각만을 가정했을 때) 정보를 손실 없이 잘 넣어야 하는 셈이니. 새삼 정현종 선생님의 "광휘의 속삭임"이라는 시제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놀라게 된다. 아무튼, 이렇게 일상적인 장면의 묘사조차도 거저 되는 일은 아니었으니, 좋은 연습이 되었다.
이쯤 말했으면... "눈송이의 정반합"에서 주가 된 그 장면은, 일부분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창문 너머, 새파란 돌개바람에
나도 모르게 눈 깜빡이면
나뭇가지에 함박눈 많던 것은
이 아침에 다시, 벚꽃으로 퍼붓는다.
12줄을 4줄로 줄였다. 하지만 이게 과연 에러 없이 돌아가며 확장성도 있는 코드인지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도 시적 표현은 내내 신경을 쓸 일이지만 1단원은 일단 이쯤 하기로 하고, 이제는 2단원, "대상과 인식 과정"을 디비 팔 차례가 되었다. 커밍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