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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Oct 19. 2023

빈말에 대하여

연초에 “좋은 공연 있으면 저도 알려주세요!” 혹은 사후에 “그 공연 가고 싶었는데ㅠㅠ” 라고 자주 말하는 저 수많은 사람들 중, 정작 내가 공연을 못 가게 되어 티켓을 양도하겠다 할 때에 선착순으로 손을 드는 사람 한 명이 없는 법이다. 그 역은 반드시 성립하지 않는다.


말이 앞서는 사람들이 싫다. 그들이 잘못한 건 없다. 단순히 우리가 서로 맞지 않을 뿐. 그들은 나의 수고로움이 부담스러울 테고, 그들이 내 수고를 낭비하는 것이 나는 싫다. 사전에 합의된, 그들 빈말의 범위를 나는 알지 못한다. 이렇듯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고, 그래서 서로 싫어한다.


세상엔 빈말 하나가 섞이면 다른 모든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 존재하고, 그 집합은 나를 포함한다. 그 집합에 말을 걸 때에는 오차 범위에 대한 책임이 발생한다. 소통의 쌍에서 한 쪽이 그 집합에 속해있을 때, 친분의 정도에 따른 조정은 어지간히 오래 된 사이가 아니라면 무의미하다.


그렇다. 여기에도 사실은 친분이 작용한다. 이러한 불편의 기저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바빠 죽겠는데 그 따위 빈말은 왜 해서 공연한 수고를 들이게 하고 지X이야.” 즉, 나의 바쁨이 나의 봉사에 비해 중요하기 때문에 짜증이 발생한다. 이 때,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면 바쁨보다는 봉사하고픈 마음이 앞설 수 있다. 따라서 정확히는, “친밀하지 않은 사이에 빈말을 마구 날리는 사람은 진심이 느껴지지 않으므로 친해지고 싶지 않고, 그들의 접근이 향후 수고를 예감하게 하므로 이에 불쾌하다“고 말해야 한다. “말이 앞서는 사람이 싫다”는 강력한 워딩에는 이와 같은 장황한 함의가 숨어있다.


따라서 친분 관계의 형성에 있어, 초면에 날리는 빈말의 빈도의 차이가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나와의 친분 관계 형성이 그들의 참 목표였다면, 답은 간단하다. “친해지고 싶은데 좋은 공연 있으면 데려가 주세요. 친분이 목적이라 음악은 사실 상관 없어요.“ 혹은 ”너랑 친해지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는데 네놈이 좋은 걸 듣는 것 같으니 구글닥에 위시리스트 만들어서 공유 좀 해주지 않을래?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랑 가려고ㅎ“라고 말을 좀 정확하게 해주면, 그리고 그 말에 따르는 행동들을 해준다면 피차 매우 기쁠 것이다.


마치며, 이 글은 -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화가 싫다는 단순한 내용의 이 글은 - Emerson String Quartet의 마지막 콘서트 티켓 한 장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쓰여졌다. 일요일 공연인데 아직도 양도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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