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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간목 Nov 04. 2023

당연히도 버리는 시간

심장이 빠르게 뛰는 아침이었다. 머리로 가는 혈관도 맥놀이를 이어받았다. 베개와 머리 사이에서 심장이 뛴다. 쇠리쇠리한 겨울 아침 볕이 눈꺼풀을 비췄다 말았다 한다. 머리가 좌우로 흔들린다. 나는 아무래도 잠에서 깬 것 같다. 지금은 그 공연한 피로를 여기, 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간이다.


일이 바쁘다. 좋은 일이지만, 겁이 더럭 나기도 한다. 날이 추워졌다. 좋은 일이지만, 들고 다닐 짐이 많아지기도 했다. 세간살이가 늘었다. 좋은 일이지만, 치울 데가 많아지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 좋은 일이다. 뛸 시간도, 피아노 칠 시간도 없다. 좋은 일이다. 집을 치울 시간도 없다. 좋은 일이다. 지금은 나쁜 일들을 여기, 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간이다.


어제는 친구들을 둘 만나고 왔다. 뉴욕에 출장 온 A는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B는 결혼을 준비하며 조금 일찍 약혼녀와 같이 지내고 있다. A는 오늘 아침에 뉴욕을 떠난다. 어젯밤에 그는 선물에 대해 생각했다. B는 자주 침묵에 빠진다. 아무래도 일이 잘 풀리는 중인 것 같고, 여타 사는 일은 그 정도는 아닐 거란 인상을 받았다. 헤어질 때쯤, 우리는 서로 예전만큼 반갑진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 미혹을 여기, 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간이다.


자기 커뮤니티 안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인 C라는 친구가 있다. 우리를 예전에 서로 불편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뼈와 살로 구성된 사고회로 안에서 실체를 움켜쥐는 방식이, 우리는 사뭇 다르다. 살가죽을 더듬으며 내부구조를 추측한 다음 능숙하게 취사선택을 하는 그와, 뼈와 살을 다 발라내고는 군더더기를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나. 그가 자신의 "문화"를 자랑할 때 나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소리 높여 말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그 허영심을 여기, 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시간이다.


사랑하는 생업과 사랑하는 취미를 둘 다 쫓고 있는 D라는 친구가 있다. 여동생과 매부의 경우엔 당신들 생업은 나름 좋아하지만, 사랑해마지 않는 취미 만큼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자신들 취미에 관련해 준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네트워크가 있다. 하다 말기를 반복한 나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까. 감정가, 전문가, 혹은 권위자, 사실은 그저 영어로 Connoisseur라는 단어는 해가 갈수록 나에겐 무서워지고 무거워지기만 한다.


반대로 생업을 사랑해 마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초년 인생이 너무나 바쁘고 충실하여, 식사와 빨래 등을 의무를 다하듯이 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과 육아 역시도 의무를 다하듯이 시작했다. "얼마나 바쁘면 그럴까" 싶어서, 멀리에 사는 그들 동네에 갈 일이 나에게 생기면 나는 반드시 연락을 넣어보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만나기가 쉽지 않고, 연락도 잘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이제 우리는 다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발 밑이 흔들흔들 할 때에만 공감할 수 있고, 함께 하기 좋은 인간인가? 나의 천성과 그대들의 처지가 맥놀이를 하는 것은 반드시 그대들이 불우할 때에 국한되는가? 그렇다면 언젠가, 당신들의 심장도 다시금 빨리 뛰어 잠을 설치는 어느 밤이나 새벽이나 아침엔가에, 가슴 속 빈 구멍이 채워지지 않는 출퇴근길에, 혹시 나라는 인간을 언젠가는 떠올리게 될는지? 늘상 빠르게 뛰는 심장으로 가슴 속 구멍을 후벼 파서 애지중지 키워가며 살게 되고 마는 나라는 인간을?


이런 공포들을 아직은 안고 가야 하는지, 아니면 일찌감치 버려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요즘은 출퇴근이 피로하여 달리기를 잠시 멈추었다. 2월에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면 다시 달려보려고 한다. 직장 일을 우선하느라 퇴근 후에 내 공부를 못한 지도 꽤 오래 되었다. 2월에 직장 근처로 이사를 가면 다시 시작해볼 요량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더라...


이것 저것 다 내버리고 나니,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다면 푸념을 하고픈 마음도 이제는 여기, 이 쓰레기통에 버릴 시간이다. 뚜껑을 덮고, 건조까지 끝난 빨래를 차분히 가지러 갈 테다. 차곡차곡 하나씩 개어 한 주를 살고 난 자리에 넣을 요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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