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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몸맘 May 02. 2024

일화 기억을 통한 사유

나의 경제관념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문득 나 같은 일반 사람이 겪는 일생동안의 소비 패턴에 대해 생각해 보던 중 나의 경제관념 형성 과정부터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선천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셨다면 공감이 어려울 수 있다.)

나의 경우 예닐곱 살 정도의 어린 시절, 바나나쮸나 새콤달콤과 같은 캐러멜류를 좋아했고 집 앞에 있던 ‘창희슈퍼’에서 각각 200원을 주면 그것들을 살 수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TV를 보다가 단 게 땡겼고 엄마가 항상 지갑을 장롱 안에 두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갑에서 수백 원을 몰래 꺼내 창희슈퍼로 달려가 바나나쮸를 샀다. 포장을 뜯어 7개를 다 먹어 치우고는 쓰레기봉투 깊은 곳에 잔해물을 은닉하는 치밀함으로 완전범죄를 노렸고, 그 사건을 통해 ’돈으로 물건을 산다‘는 경제관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한번 해보니까 괜찮아서 몇 번 그런 행동을 반복했던 것 같은데, 한 번은 엄마한테 걸려 매우 처맞고 난 다음 지갑에서 슬쩍하는 버릇을 고쳤던 것 같다. 매가 약이던 ‘낭만’의 시절..

이후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하루 500원의 용돈을 받아 등교 시에 문방구에 들러 학교에서 지급하는 흰 우유에 타먹을 스틱형 ‘제티’와 맥주맛사탕 정도를 사 먹었었고 한 번은 지나가는 동네 형에게 몇백 원을 뺏기기도 하는 ‘낭만’을 경험했다. 그 정도 경험을 통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고 불행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중, 고등학교에 들어서며 조금 높아진 용돈을 받았지만 넉넉지는 못했기에 매점에서 친구에게 졸라 강제로 얻어먹기도 하고 용돈을 얼마간 모아 여자친구에게 선물도 해주고 데이트도 했던 것 같은데, 정말 돈이 없어 어디 가서 뭘 하자는 여자친구에게 “나 돈이 없다”고 고백하며 쪽팔리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변변치 않은 옷 한 벌 사 입지 못해 교복과 학교 체육복을 거의 매일 입고 다녔지만 다들 그러고 사는 줄 알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꽤나 착한 축에 든 것 아닌가 싶은 자기 위로를 한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용돈 내가 벌어 쓰는 습관을 들여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며 돈을 벌어봤는데,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나는 돈을 벌려고 뭘 하는 건 좀 싫다 ‘. 이후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어렵고 힘들 때 원인이 금전적인 것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그만두고 말기도 했다.(이후 일당 알바를 하거나 몸과 마음이 편한 알바를 찾아 살 길을 도모했다.) 그래서 돌이켜봤을 때 내가 알바하면서 가게에, 사장님에게 폐를 끼친 경우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참 괴롭다. 아마 그 시절이 SNS가 활성화된 시대였다면 나는 책임감 없고 제멋대로인 알바의 예시가 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못나고 어두운 나의 과거를 생각날 때마다 곱씹으며 반성해야 할 것이다.

여튼 그렇게 용돈을 벌어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노는 등의 일상생활을 이어가다 가끔 돈이 모자라면 부모님께 SOS도 청해가며 여유라고는 없이 하루살이처럼 살아갔다. 돈에 얽매여 살기도 싫지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기도 함을 번번이 느끼기도 하야 ‘돈이 많으면 참 좋겠구나 ‘를 새삼스레 깊이 깨닫지 않았나 싶다.

나는 대학교 4년을 쭉 다니고, 졸업 후 군대를 장교로 임관하여 처음으로 급여생활을 하게 되었다. 안정적이고 계획적인 소비가 가능하게 된 때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도록 정신없이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을 모두 긁어 쓰고 신용카드의 맛을 알고 현금이라고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이 신나게 돈을 썼던 것 같다.(사실 초급장교 급여가 그렇게 큰돈은 아니었음.) 어디에 뭘 그렇게 돈을 썼나 생각해 보면… 모르겠다. 그냥 맨날 돈이 없었다. 굳이 변명해 보자면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맛있는 거 먹고 여기저기 생기는 경조사들 챙기고 베풀면서 ‘소비의 재미’를 느꼈던 시절인 것 같다. 한편으론 변변치 않아도 다달이 들어오는 나의 안정적 수입에 대한 과시일 수도 있었겠다. 그러면 아깝단 생각이 안 들거든. 돈 쓰는 일에 매우 관대하고 순수했던 또 하나의 ‘낭만’의 시기라 규정할 수 있겠다.

군인으로 자랑스럽게 사회에 발을 내딛고 월급생활을 하게 된 아들의 착실하고 탄탄한 재정적 미래를 기대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키워준 보답으로 다만 조금의 용돈까지도 생각했을 걸로 예상(?)되는 울 엄니에게 아들로서 실망을 끼쳤고, 나는 이후로도 나를 위한 소비로 일관했던 것 같다. 그땐 왜 그랬는지 싶지만, 결국 찾아낸 핑계로 경제적으로 빡빡했던 학창 시절에 대한 분노, 보복소비라 여기며 합리화하기로 했다. 틀린 말도 아닌 게, 꼬박꼬박 들어오는 급여에 마음 놓고 그다음 달의 월급을 생각하며 생활하는 군인노동자로서의 첫 발은 그렇게 내딛더라도 충분히 늦지 않게, 도리어 자연스럽게 사회인의 첫 단계에 접어든 것이란 생각도 든다… 혓바닥이 길었다. 물론 한편으로 내가 누군가를 부양하거나 책임져야 할 상황에 놓이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 복에 겨운 이야기임을 인지하고 있다. 그런 환경을 조성하여 마구잽이 소비(?)를 가능케 해 주신 부모님께 철없는 감사와 심심한 미안함을 전한다.

그렇게 젊고 아름다운 낭만의 시기를 지나 30대로 접어들면(물론 아직도 젊다고 믿고 있다.), 보통의 경우 사회인으로서 각자의 삶에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좌충우돌적 사회 경험을 통해 파란만장하고 다양한 희로애락(?)을 겪어가며 인생, 세상사 등에 대해 각자만의 깊이로 성숙해 간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각자의 재정상황에 대해 현실적으로 직시(이렇게 돈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정신 차리자.)하고 안정적인 재무설계를 위해 노력하며 금전적 이해타산을 따지는, 말하자면 돈에 대해 ‘차가운 머리가 발동되는 시기’를 맞는다. 예을 들자면, 허구헌 날 만나던 친구들과 연 1-2회의 주기적 모임 정도로 줄어들고, 이 또한 ‘회비’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각자 손익을 따져가며 감정을 쓰게 되는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의견들을 모아 규칙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여 어느 정도의 형식을 갖게 되는데, 수많은 이유로 모임이 지속되지 못하고 와해되는 경우도 많다. 복잡다단한 세상사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 못하면 상처가 부풀어 커질 수 있으니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

적다 보니 내가 이 글을 왜 쓰는 것이었던 건지 길을 잃었지만 내 갈 길 가겠다.

아무튼 결혼, 연애, 투자실패, 투자대박, 지병, 덕질 등 각자 상황에 따라 삶의 방향이 매우 다양하게 갈라지는데, 일관성 있는 신념이나 규칙 하나 물고 늘어져가며 따르든가 말든가 결정해야 할 시기이니 각자 나름의 좋은 판단이 필요하다. 돈을 어떤 가치를 두고 벌고 쓰냐의 문제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이다. 실례로 지금 나의 경우, 크게 돈 쓸 일은 없는데 나가는 돈은 많은(알 사람은 알 것이라 생각한다.) 꽤나 어렵고 고단한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에 몇천 원, 몇만 원이라도 나갈 일이 있으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뒤 쓰고 나서 후회하거나 안 쓰고 나서 안도(?)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돈에 큰 욕심이 없지만 그렇다고 경제활동을 쉰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 먹고도 이러고 살 줄은 솔직히 몰랐고, 아마 계속 이러고 살 것 같다. 계획대로 될 리도 없고 언제 어디서든 금전적 타격이나 은혜가 도사리는 세상에서 큰 은혜가 떠내려오지 않는 이상은 그렇다.


후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버린 중심 내용을 좀 정리해 보자면,

유년기(돈으로 물건을 산다는 ‘구매, 거래’ 개념 탑재) —> 청소년기(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돈의 속성 인지) —> 사회초년기(경제활동의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고 과시, 소비에 관대) —> 가정구성기(소비의 무상함을 깨닫고 이성적 소비를 추구)

정도 되는 것 같다.

위의 내용은 분명 지극히 평범하고 주관적으로 변화해 온 나의 경제적 개념일 것이다. 여기저기 둘러보면 정말 돈으로 상상 못 할 어려움 혹은 즐거움을 느끼고 사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과 일화들이 널리고 널렸으니 많은 이야기 중 하나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굳이 교훈적 이야기로 식상한 마무리로 끝내보자면

가진 게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고 필요한 게 적은 사람이 부자라고 누가 그러더라.

돈. 돈. 돈. 생각하고 있으면 그저 헛웃음이 난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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