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일 Nov 15. 2024

학가산(鶴駕山)

학가산 산행기

삼구정(三龜停)에 올라서면 북으로 학가산이 빤히 보인다. 삼십 리는 족히 될법 거리지 앞에서 얼쩡거리는 산이 없어, 제 모습 온전히 드러다.


학가산 정상 부근엔 통신타워가 몇 개 서 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철탑이 있었다. 군사용이거나 방송국 통신타워 정도로 생각했을 뿐, 정확한 용도는 알지 못했.

학가산은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이니, 저런 거 하나쯤 있는 것 당연하게 생각했다.

예전에 비해 그 숫자가 늘어나긴 했지만, 철탑은 산의 일부가 되었고, 그 모습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성인이 되어 고향에 오면 늘 던 산이지만, 산에 올라 볼 생각은 못했다. 저기는 산세가 험하고, 가는 길도 멀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가산 아랫동네라 하면 이 지역에서 가장 오지 마을로 여기는 곳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주 어릴 땐 "서울 가는 길이 학가산 뒤로 있다"는 어른들 이야기를 듣고, 산 너머 어딘가에 있을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국민학교 학년이 되었을 때 서울로 오가는 경기여객 버스가 학교 앞으로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엔진소리에서 힘이 넘, 길쭉한 모양새가 시골버스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차였다. 그 시절 "저 차 타면 서울까지 다섯 시간도 안 걸린다"는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고, 서울 가려면 학가산 뒤로 가는 게 아니라 예천방향으로 가야 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시골동네에서 서울 가는 길은 문경새재를 넘거나, 학가산 뒤편으로 돌아 죽령을 통과하는 코스가 있다. 어디로 가든 서울에 이를 수 있지만 거리상으로는 문경새재를 넘는 길이 조금 더 가깝다. 지금도 시골집에 자주 들르지만, 중앙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탓에 어릴 적 동경했던 그 길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동녘에 학가산의 정기를 받아 ~

국민학교 시절 불렀던 우리 학교 교가의  소절이다. 근처에 학가산이 있고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고장답게 학가산과 낙동강은 가()에 단골로 등장한.


학가산은 안동의 배산(背山)이고, 영주 에 해당된다. 예천 사람들에게는 해 뜨는 다.

근방에서 가장 높만, 로 오르기 보다 눈으로 바라보 산이었다.


오십 중반이 된 오늘에야 기회가 생겼고, 큰맘 먹고 학가산으로 향한다. 산행 들머리 천주마을 가는 길은 온통 콩밭 세상이다. '대두서(大豆西)'라는 마을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콩이 많이 나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도착해 당한 자리차를 세운다. 버스정류장 안내판을 보고 여기가 시내버스 종점이란 것을 알게 된다.


눈이라도 오는 울에는 버스가 들어오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대가 높다. 고개 들어 산정(山頂)을 올려 보니,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에 방송국 통신타워가 서 있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안내목이 국사봉까지 2km 거리임을 알려준다. 방송국 철탑을 등대 삼아 부지런히 걸어보지만 수북하게 쌓인 낙엽이 발목에 척척 감긴다.

인기척 없고 등산객 흔적조차 희미한 산길 이어지니, "이러다가 산돼지라도 나오는 거 아닌가" 하는 무서움 마저 느껴진다.

길 잃은 등산객 홀로 산속 헤매는 것처럼 허겁지겁 발길 재촉 해도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간다.


'마당바위'라 불리는 평평한 바위에 이르러 한숨 돌리며 바위에 올라보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다. 다시 통신대 방향으로 향하니, 길이 가팔라지고  아래로 천주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낙엽 때문에 힘이 두배로 들지만, 고립된 느낌에서 빨리 벗어나고파 쉬지 않고 움직인다.


긴 터널 같았던 스산한 오솔길 벗어나니 방송국 건물 울타리에 도착한다.


이제 국사봉까지 남은 거리 500미터.

등산로는 반듯한 나무계단으로 바뀌었지만, 높아진 고도 탓에 등줄기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진다.


삼모봉, 유선봉, 국사봉이 차례로 있지만,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국사봉으로 향한다. 등산하는 것도 산객들 떠드는 소리 들으며 함께 걷는 이가 있어야 제맛인데, 인기척 하나 없으니 국사봉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가지 않는다.


마침내 시루처럼 뭉툭하게 솟은 바위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기가 국사봉 정상이다. 바위에 녹색 철계단이 놓여있지만, 안전이나 미관에 대한 고려 없이 어설프게 걸쳐놓은 구조물이다.

드디어 정상에 오르는 순간이다. 저 위에서 바라보는 고향마은 과연 어떤 풍경일까.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처럼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계단을 오른다.


아하 ~ 학가산은 이런 곳이었구나....

상상과 달리 평평하고 널찍한 바위가 아니다. 겹겹이 쌓인 시루떡바위가 양쪽으로 갈라졌고,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요새 같은 지형이다. 바위면 상단에는 학가산이라 적힌 정상석이 박혀있다.

어릴 적부터 늘 보던 학가산에 오늘에야 비로소 올랐다. 기막힌 조망 눈앞에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 가슴속으로 파고드니, 총 맞은 것처럼 뜨끔한 전율이 온몸으로 퍼진다.


아! 좋다.

고향마을 들판과 도청신도시 아파트가 아득하게 보인다. 무수히 많은 산을 다녀 봤지만, 그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가슴 뭉클한 감정이 솟구친다. 고향땅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 기분이야 말로 감동 그 자체다.


안동사람들 중에 학가산 국사봉에 올라 이 경치를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10%에도 못 미칠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아직까지 이곳에 올랐다는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으니까.

지금에라도 정상에 올랐으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교가를 통해 수 없이 불렀던 나의 '학가산', 우리들의 학가 마운튼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도미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