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제니 Oct 05. 2021

미술학원 선생님

만 5세, 수치를 배우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는 만 5세 때의 일이다. 엄마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나를 유치원이 아닌 미술학원으로 보냈고 나름 그곳에서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오늘은 그때 그 '미술학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 선생님은 긴 머리에 꼬불꼬불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선생님의 패션 또한 굉장히 세련됐었던 것 같다.


그날은 한국의 전통 탈을 사포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리는 날이었다. 그때 내가 고른 탈이 정확히 무슨 탈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꼬불 꼬불 땋은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고 연지곤지를 찍었던 걸로 보아 아마도 '각시탈'이었던 것 같다.



얘들아, 밑그림은 선생님이
수정해줄 수 있게
크~게 그려.



그렇구나, 크게 그려야겠구나. 가장 먼저 사포지 중앙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후 사포지 위아래 끝과 끝에 맞춰 꼬불 꼬불 머리카락을 그렸다.



대충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다. 크게 그리라고 했지만 선생님이 수정할 필요도 없이 딱 맞춰 그렸으니 더 칭찬을 받겠지? 어린 마음에 잔뜩 신이 났다.


밑그림을 먼저 그린 아이들부터 차례차례 선생님 앞에 줄을 서서 그림을 검사받았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고 칭찬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한껏 마음이 들떠 있었다.



내가 크게 그리랬잖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친 선생님은 내 그림을 반대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너무 놀라 몸이 굳었다.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도 놀란 토끼눈이 되어 눈치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일에 멍청하게 서 있는데 선생님이 나를 무시한 채 내 다음 친구의 그림을 검사하고 있었다.



이것 봐! 이렇게 크게 그리랬잖아!
크게 그려야 수정할 수 있다고 했지!



나를 보고 하는 말인 듯하면서도 반 전체를 향해하는 말인 듯 선생님은 큰소리로 말했다. 그렇구나, 내가 크게 그리지 않아서 선생님이 화가 나셨구나.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를 몰라 가만히 서 있었고 이후 선생님은 계속 다른 친구들의 그림을 검사를 이어갔다. 그래서 나는 그냥 바닥에 떨어져서 나뒹굴고 있는 내 그림을 주우러 갔다. 아아, 서글퍼라. 태어나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그냥 크레파스를 꺼내 내가 그린 탈 그림을 색칠했다. 서러움에 눈물이 삐죽삐죽 눈을 비집고 나오는데도 책상에 고개를 푹 처박고 내 그림을 완성했다.


그때 그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냥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었다. 아마도 그 일을 엄마에게 말하면 엄마가 더 속상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 큰 성인이 된 이후에야 그 일을 웃으며 그런 일이 있었어하고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 그 선생님은 그날 기분이 안 좋았거나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들었겠거니 한다. (씁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