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일본과 첫 등산

바질 계란 김밥과 옥수수 크림수프

by 주은

손톱달이 하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오전 9시.

우리는 타카오산으로 출발했다.


충전을 제법 해뒀음에도 핸드폰 배터리는 60%남짓.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타카오산까지 가는 동안, 나는 줄곧 책을 읽었다.

책이 심리학, 그것도 상처와 트라우마에 초점이 맞춰진 내용이었기에 은연중에 가슴속에서 거센 파도가 일렁일 무렵, 우리는 타카오산입구 역에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어 그곳에 들러 보았다.

이름은 TAKAO COFFEE.

지명을 따서 지어진 단순한 이름에,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예상은 좋은 쪽으로 크게 빗나갔다.


들어가자마자 보인 깔끔한 내부에 먼저 가슴이 뛰었고, 쇼케이스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케이크들을 보며 두 번 설렜다. 여긴 명당이다! 하고 숱하게 카페를 돌아다닌 내 경험치가 말해주었다.

아니다 다를까, 콜드브루 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쓰지도, 시지도, 떫지도 않은 깔끔한 맛. 같이 먹은 구움 과자 또한, 너무 달지 않아서 우리는 다음에는 꼭 케이크를 먹어보자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할 시간.

초심자를 위한 코스는 총 6개가 있었는데, 우리가 선택한 건 가장 험준하면서도 빨리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는 6 호길이었다.


오랜만에 올라서인지 만만한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적은 등산로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어서, 끊임없이 "너무 좋다!"라고 감탄을 뱉었다. 얼핏 보면 다 비슷한 풍경인데도, 나는 틈만 나면 풍경과 사랑에 빠졌고,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바닥을 열심히 보느라,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는 것. 노력은 했지만.. 퍽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등산을 오기 전, 경락을 받으러 갔다가 항상 담당해 주시는 J 씨한테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나와요.'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계단은커녕 포장된 길조차 없는걸..? 싶은 마음으로 40분 정도 산을 올랐을 무렵, 정상이 가까워져서인지 길이 점점 평탄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 여태껏 홈트로 단련해 온 근력으로 이겨내 보리라 하는 비장한 다짐과 함께 호기롭게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고, 장렬히 패배했다. 중간부터 숨이 가쁘고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계단 옆 비탈길에서 잠깐 쉬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 올랐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려 약간 휘청이기까지 했다. '쉬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나는 비장의 카드, 도시락을 꺼내 들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정상을 코앞에 두고, 한적한 등산로에 놓인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마침 일어나면서 자리를 양보해 준 중년의 부부에게 나는 내심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정상에는 푸드 트럭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과, 경치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인해 앉을 곳이 없어서 우리가 여기서 도시락을 먹은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바질 계란 김밥과 게살 크림 크로켓, 옥수수 크림수프. 소풍에는 김밥이지 하면서 구상한 메뉴이다. K의 취향을 고려해서 소시지를 넣어봤는데, 다행히 매우 좋아해 줘서 나도 한시름 놓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휴식이 목적이긴 했어도 아침을 꽤나 간소하게 먹고 나왔기에,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는 소시지 대신 오이, 바질 대신 명란을 넣은 마요네즈를 넣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을 먹고, 얼마 남지 않은 정상을 향해 5분 정도 걸어가자, 우리는 산을 오르며 처음으로 '인파'를 마주하게 되었다. 정상에 가까워지며 각기 다른 등산로로 올라오던 등산객들이 한데 합류하게 된 것이다.

몰려드는 인파에 난색 하면서도, 정상에 거의 다 왔다는 생각이 나를 설레게 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른 순간, 저 멀리 자그맣게 도시가 내려다 보이는 경치가 나를 맞이했다. 감탄하던 것도 잠시, 내가 원했던 건 낯익은 도시의 전경이 아니라 가을 옷을 입은 풍경이었는데 하며 아쉬움을 느꼈다. 아직 단풍이 완연히 물들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였던 것이다.


한동안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던 우리는 곧 하산하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은 사람의 왕래가 잦다는 1 호길. 기나긴 등산길을 내려가며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K가 문득 "남이 잘 찍은 사진을 저장하면 내가 찍을 필요는 없는 거 아냐?"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잠시 골몰했다. 그 말이 내 안의 어딘가에 걸렸던 것이다.


겉으로는 그럴 수 있지라고 이야기하며 한참 생각을 곱씹던 나는, 이내 무엇이 걸렸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사진은 잡아 두고 싶은 찰나의 시선이자, 내가 사랑에 빠진 순간의 기록이다. 설령 같은 걸 보고 사진을 찍었어도 남이 찍은 사진은 내가 바라본 그 순간을 그대로 남아낼 수는 없다. 차라리 못 찍은 사진이라도 내가 찍은 사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K의 발언에 답답함을 느낀 것이었다.

굳이 그걸 다시 K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얽혀 있던 실타래를 하나 풀어낸 기분이라,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주변 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초심자 코스 중 가장 험준한 건 우리가 올라왔던 6 호길이라고 들었는데, 이내 1 호길의 가파른 경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살짝 큰 운동화 속에서 발이 미끄러져, 앞코에 발가락이 부딪혔다. 경사가 심해 몸을 가누는 것도 쉽지 않아 터벅터벅 걷고 있자니, 자동차를 탄 것도 아닌데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K와 나는, 포장되지 않은 바위길일지언정, 경사 자체는 그리 심하지 않은 6 호길을 선택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이야기하며 비탈을 내려왔다. 2km 남짓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멀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아침 11시에 오르기 시작한 산을 다 내려오고 나니 시간은 벌써 오후 3시 반. 우리는 돌아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꾸벅꾸벅 조는 K를 옆에 두고, 나는 산을 오르며 느꼈던 감정을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메모장을 켰다.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메모장에 쏟아내고 밀려오는 고단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쯤 다시 도착한 도쿄. 복작거리는 도시의 분주함에, 아쉬우면서도 반가운 감정들이 교차했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곳이 내게는 정겹고 친숙하지만, 대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제법 고단하고 버거울 때가 많다. 일본에 살기 시작한 뒤 처음으로 가본 등산에서, 나는 삶이 피곤할 때 올만한 피난처를 찾은 것 같다. 다음에 또 와야지. 직접 싼 김밥을 들고.



바질 계란 김밥 (2인분)

[재료]

소시지 3개, 계란 3개, 김밥용 김, 밥, 올리브 오일, 바질 페스토


[만드는 법]

1. 소시지는 지름이 두꺼운 걸 사용. 미리 데쳐둔다.

2. 계란은 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잘 풀어 계란말이를 만든다.

3. 계란말이를 랩으로 감아 원통 모양으로 모양을 잡아준다.

4. 취향에 따라 세로로 2-4등분 해준다.

5. 밥에 올리브유를 섞어 준비한다.

6. 김밥용 김에 밥, 계란, 소시지를 취향껏 올린다.

7. 바질 페스토를 올려서 말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