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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파르 Nov 15. 2023

인간은 반성하는가

자백의 의미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자백하면 어느 정도는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되고 있는 것 같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잘못을 반성한다고 보기 때문일까? 반성한다면 재범위험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자백을 하는 것이 반성하는 것일까?


자백을 하는 데는 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사 과정에서 확증이 수집되는 등의 이유로 부인해도 딱히 승산이 없을 때는 자백이 유리한 정상으로는 고려되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자백하기도 할 것이다. 전략적 자백(?)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자백은 반성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확실한 증거도 없다 보니 꽤나 승산이 있어 보이는데도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해서 하는 진정한 자백(?)은 얼마나 될까. 내 느낌상 그런 자백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자백하는 사건의 판결문을 쓸 때 내가 양형의 이유 부분에서 많이 쓰는 표현은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점”이다. 이 표현을 도저히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이라고는 못쓰겠더라. 자백을 해도 진짜 반성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뒷목이 공룡처럼 될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리며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도, 반성문을 매일매일 수 십 통 제출해도, 거액을 주고 피해자와 합의를 해도 그런 의문이 남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얄팍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의 생각은, 인간은 반성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반성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다시는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정도로 정의한다면, 적어도 나는 반성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다. 자신의 잘못을 흠칫 알아채고 잠깐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럴싸한 행동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떤가? 범행을 깊이 반성한다며 사회에 이로운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딱 한 번만 선처를 바란다던 피고인이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머지않아 비슷한 범행을 다시 저지르고 또다시 저지르는 일이 빈번한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인간은 잔소리, 다툼, 징계 또는 처벌 등 외부적 요소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스스로의 깨우침이 있더라도 잠깐 ‘회상’, ‘회고’ 정도만 할 뿐 진정한 반성은 하지 못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이 반성을 통해 변하는 건 불가능하다. 죽기 전까지도 끊임없이 반성을 할 줄 아는 훌륭하고 또 훌륭한 인간이 있다면 “와.. 진짜 인간도 아니다”라는 표현을 써도 될 것 같다.


피고인이 자백을 하면 형사재판 절차가 간단해져 재판 지연이 방지되고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지 않게 되는 이로운 점은 확실히 있다. 그러나 이런 절차적이거나 간접적인 이유 말고도 자백이 유리한 양형요소로 고려되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관해서는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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