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말의 품격
얼마 전 아무 생각 없이 예능을 보다가, 너무나도 품격 있는 장면을 마주했습니다. 삼시세끼 어촌편 5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참바다(유해진)씨는 새벽에 자고 있는 차승원씨와 김호준씨를 뒤로하고 통통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배낚시를 합니다. 참바다씨는 5시간 동안의 인내 끝에 큰 입질을 느끼고, 노인과 바다의 한 대목처럼 참돔과의 사투를 벌이다 선장님의 도움으로 뜰채로 겨우 참돔을 건집니다. 참바다씨는 거대한 참돔의 크기와 무게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연신 "우와!!!"를 반복합니다. 참바다씨가 5년 만에 만난 참돔이라고 하네요. 그 과정은 참 경이로웠습니다.
참바다씨는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참돔이 담긴 아이스박스를 들고 육지에 내려 차승원씨와 김호준씨가 있는 집으로 갑니다. 잠에서 깬 차승원씨와 김호준씨는 온몸으로 여유를 풍기는 참바다씨를 보고 "뭔가를 잡은 것은 같은데.. 에이 뭐어~" 정도의 반응을 보이며 아이스박스를 열어봅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 얼굴에 싹 웃음을 잃고 "우와..!" 하며 감탄하죠.
요리 담당 차승원씨는 재빠르게 참돔을 손질하여 회를 치고, 고추장, 설탕, 식초, 깨, 다진 마늘을 쉐킷쉐킷해서 특제 초장을 만듭니다. 셋은 둥그런 테이블에 모여 앉아 캔맥주를 촤~ 따고, 건배를 하고, 차승원씨와 김호준씨의 강한 권유로 참바다씨가 먼저 젓가락을 듭니다. 갓 딴 상추에 참돔회 한 점을 올리고 빠알간 특제 초장을 얹은 후 쌈을 입에 넣습니다.
참바다씨는 잠깐 오물오물하다 입을 엽니다.
"음~ 초장이..."
엄지를 척 올리고 몇 번이나 손을 흔듭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현실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아이스박스를 열었을 때 차승원씨의 표정처럼이요.
새벽부터 통통배 타고 바다에 나가 5시간 동안 고생고생을 해서 거대한 참돔을 잡아 오고도, 쌈에 고이 싼 참돔회를 입에 넣은 후 한 첫마디가 "초장"에 관한 것이라니. 자신이 참돔을 잡아온 일보다 옆사람이 맛깔나게 초장을 만들어 준 일을 먼저 언급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가진 생각과 말의 품격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당연히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하는 일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고, 어렵고, 귀찮고, 짜증 나고, 대단하기도 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한 조직 내에서 업무 분담을 할 때마다 각자 자신들이 "지금까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말이야, 어려운 일을 말이야, 얼마나 많이 말이야, 했는데!! 어떻게 나한테 또 이런 일을 맡기냐는 말이야!!"라는 언행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진심으로 "아냐, 나보다 내 옆 자리에 앉은 김과장이 더 중요한 일을 했고, 김과장 일이 훨씬 많았지. 그러니 이번엔 김과장은 좀 쉬운 업무를 맡고,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게 좋겠어." 하는 사람, 글쎄요 몇 명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 몇 명 외에 그런 사람 못 봤습니다.
"내가 한 것은 다른 사람이 한 것에 비하면 크게 내세울만하지 않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참 어렵지요. 저도 자주 "와 진짜 왜 이렇게 힘드냐, 나만 일 하나 봐, 맨날 나만 이래."라고, 사실을 왜곡한 채 망상과 환상에 빠지곤 합니다. 왜곡된 망상과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 일이 많아져서 힘에 부치면, 스스로의 업적(?)에 과몰입하여 스스로에게 영웅담(?)을 늘어놓는 정말 별로인 사람이 됩니다. 제 모습이 "제가 정말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자아분열 현상일까요?(ㅋㅋ)
항상 내가 한 일보다 남이 한 일의 과정과 결과를 먼저 봐주고, 그에 대한 감사와 존중의 마음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표현해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그 생각과 말. 참바다씨가 갖춘 그 생각과 말의 품격을, 저도 참 갖고 싶습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