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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Oct 29. 2023

재난을 바라보는 어떤 시선, 밤의 여행자들

2023년 9월의 여성 작가 책 |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책속의 말

재난이 한 세계를 뚝 끊어서 단층처럼 만든다면, 카메라는 그런 단층을 실감하도록 돕는 도구였다. 카메라가 찰칵, 하는 순간 그 앞에 찍힌 것은 이미 인물이나 풍경이 아니다. 시간의 공백이다. 때로는 지금 살고 있는 시간보다 짧은 공백이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요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출발선을 넘은 게 아닐까, 하고. 여행은 이미 시작된 행보를 확인하는 일일 뿐. (p. 35)




어느 순간부터 한국 장편 소설을 잘 안 읽게 됐다. 사실 한국 장편 소설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장편 소설을 읽는 게 두려웠다. 지난번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밝혔듯이 소설에 완전히 몰입하던 나는 그저 과거의 모습이 되었고, 지금은 몇 문단 읽은 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현실이다. 그 현실을 자각하고 싶지 않아 장편 소설을 알게 모르게 피해왔는데, 독서 모임의 책으로 장편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 걱정을 안고 펼쳐 읽게 된 소설은 생각보다 페이지가 빨리 넘어갔다. 소재가 신선하네, 하이퍼 리얼리즘이다, 생각하며 어떤 장면에서는 얼굴을 찌푸리고, 또 어떤 장면에서는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급격하게 긴장감이 올라 잠시 책을 덮기도 했다. (나만 이럴지도 모르겠는데, 다음 장면이 상상가는 데다 그게 무언가 ‘큰일’일 거 같으면 긴장된 나머지 잠시 진정을 하고 다시 펼치곤 한다.) 중간에 잠시 흥미가 떨어지는 구간도 있었지만, 간만에 읽은 장편 소설치고 전체적으로 빠르게 읽혔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재난 전문 여행사 ‘정글’에서 일하는 ‘요나’다. 여행사에서 퇴물이 된 요나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회사 여행 상품으로 ‘무이’에 가게 된다. 요나는 무이의 여행 상품을 체험하지만, 요나가 평가하기에는 그저 그런 재난 상품이었다. 그러던 도중 일행과 떨어져 무이에 체류하게 된 요나는 무이의 새로운 재난 프로그램 기획에 동참하게 된다. 그 기획은 다름이 아닌 싱크홀 시뮬레이션. 인간의 힘으로 재난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작가, 매니저와 재난 시뮬레이션을 작성하던 도중 요나는 예기치 않게 무이의 현지인 ‘럭’과 사랑에 빠지는데… 스포일러가 될까 봐 거칠게 요약하다보니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다지 흥미로워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디테일에 있다.

장편 소설의 장점이라 하면 복선 회수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쌓아온 복선을 회수할 때 쾌감이 더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여기까지 장치가 맞나? 생각하게 될 정도로 다양한 장치가 이곳 저곳에 숨어있다. 이걸 찾아내는 것 또한 독서의 재미일 것이다. 이런 장치적인 디테일 말고, 독서 모임 멤버들이 모두 공감하고 이 소설의 장점으로 꼽은 디테일은 따로 있다. 바로 주인공인 요나가 겪는 현실을 묘사한 디테일이다. 

이 소설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이유는 다른 부분에서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실이 아닌 것은 이제 곧 현실이 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초반부 요나가 여행사에서 기계적으로 고객을 응대하는 장면은 내가 겪어본 수많은 고객센터 혹은 나의 기계적인 고객 응대와 겹쳐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서 요나가 회사에서 퇴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회사에서 서서히 주변부로 밀려나는, 점점 ‘없는 사람‘ 취급하는 방식인데, 이게 바로 요즘 같은 시대의 권고사직 같았다. 심지어 요나가 여행 상품을 체험하며 겪는 일도 패키지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구구절절 공감할 만큼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곧 현실이 될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재난 테마 여행이나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누군가의 재난을 보며 '나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느끼는 여행 프로그램은 충분히 생길 법하다. 재난 여행사라는 아이디어가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매일 재난 뉴스를 접하며 타인의 재난에 무뎌지는 우리 모습을 보면 이런 ‘이색 체험’에 대한 상상이 과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독서 모임 멤버들 사이에서 이 소설이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전하려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나는 우리에게 수많은 숫자로 기록되어 개개인의 사연을 간과하게 되었던 참사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슬픔에 매몰되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넘어 타인의 재난에 무관심하거나 자신의 안전에 안도하는 태도를 작가가 시니컬하게 비판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다른 멤버는 작가가 ‘재난을 스토리로 소비하는 것’을 비판한다고 생각했기에 그 부분이 작가의 오만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의견이 갈리는 와중에도 공통적으로 이 이야기의 창조주인 작가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건지 헷갈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보면 일관성이 없는 거고, 어떻게 보면 그것 자체가 의도된 것 같기도 했다. 공평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신과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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