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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Nov 20. 2023

내가 원하지 않는 속도로 달릴 때, 소외와 가속

2023년 9월의 지금 나의 관심사 | 소외와 가속 (하르트무트 로자)

책속의 말

이와 비슷하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회 변화의 속도가 가속되는 경쟁사회에서 개인은 언제나 ‘미끄러운 비탈’에 서 있다고 느낀다. 오래 휴식을 취했다가는 경험과 지식, 장비와 복장, 방향 설정과 심지어 언어에 이어서 낡아 빠지고 유행에 뒤떨어지고 시대착오적이 된다. (p. 43)
사회적 가속은 다르다. 앞에서 보았듯, 사회적 삶의 어떤 영역도 속도의 독재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거나 변형되지 않기는 어렵다. 사회적 가속이 진행되면 우리의 시공간 체제 자체가 변형되므로, 사회적 가속은 모든 것에 침투하고 모든 것을 망라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두려움을 주입함으로써 압력을 행사한다. 투쟁에서 패할 것이라는 두려움, 더 이상 속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즉 우리가 직면한 (끝없이 늘어나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휴식을 취하면 생존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실업자나 병자에게는 경주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이미 뒤쳐져 있다는 두려움이다. (p. 88)
곧, 진정으로 원하지 않는 일을 ‘자발적으로’ 할 때 소외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우리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심지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릴 수도 있다. (p. 117)




한국만큼 ‘빨리빨리’를 부르짖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유행이 바뀐다. 요즘은 우후죽순처럼 탕후루 집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소금빵, 약과, 베이글이었는데 말이다. 그것보다 조금 이전에는 마카롱이기도 했다. 식당, 카페 등에는 키오스크가 흔해졌고, 웬만한 예약은 모두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다. 젊은 축에 속하는 나도 이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나만 멈춰있을 수는 없다. 이미 저기 멀리 달려나가고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운동화 끈도 채 묶지 못한 채 일단 정신없이 달려나간다. 그러다가 운동화 끈을 밟고 넘어지게 되는 것은 안 봐도 뻔할 일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묻는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질문을 바꾼다. 우리는 왜 좋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소외와 가속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사회적 가속 이론은 “경험 및 예상이 지니는 신빙성의 빠른 쇠퇴로, 그리고 ‘현재’로 정의되는 시간 구간의 수축”으로 정의된다.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사회적 가속 이론이 무엇인지 논의한다. 2부에서 사회적 가속이 어떻게, 왜 중요한지 시간 규범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3부는 본격적으로 사회적 가속의 비판이론과 ‘소외’ 개념을 다루는데, 소외를 좋은 삶의 부정으로 여기는 저자는 그렇다면 소외가 아닌 것은 무엇이며 소외되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지 탐구한다.

처음 접하는 이론이지만 낯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에서 살고 있어서 이 가속의 개념이 더 피부에 와닿았다. 내 생각보다 사회적 가속은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휴식 시간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또한 그 예시다. 사회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 우리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도 이 가속 앞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원화되는 사회에서 서로의 이견을 조율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민주주의를 통해 의사결정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사회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의사결정마저 빨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숙의보다는 ‘이미지’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이미지의 힘이 발휘된 사례를 여럿 본 적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결국 ‘좋은 삶’에 대한 질문을 다시 던진다.

길지 않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 순간만큼은 잠시 속도를 잊게 된다.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이 책은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언어화하지 못한 채 입안에서 맴돌던 것을 저자는 명료하게 언어로 설명한다. 그 언어를 통해 나는 나의 삶을, 내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내게 질문을 던진다.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일시 정지의 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일부터는 다시 바쁘게 사회의 속도에 따라가려고 아등바등하더라도, 그 시간 중 아주 잠깐 일시 정지를 누르고, 지금 내가 하는 것은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가, 내가 이 속도를 따라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잃어버린 나의 주체성을 회복하고 소외를 경험할 가능성을 약화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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