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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것들 Dec 28. 2021

흔한 공연장 스태프의 이성 찾기 ①

written by. 김해피 | 정신 나간 힙합맨을 중심으로.



<2022 코첼라> 헤드라이너로 예정되어 있던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캇'이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는 출연자의 무료 공연 제안에도 주최 측이 위약금을 물어가면서까지 취소를 결정한 역대급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12월 16일 출시하려던 <나이키>와의 신발 콜라보도 연기되었고, 부인 카일리 제너와 커버를 장식한 <W매거진>도 전량 폐기되었다. 현지 시각 11월 5일, 그가 주최한 페스티벌 <아스트로 월드>에서 트래비스의 무대가 시작됐을 때 벌어진 압사사고 대처에 대한 결과다. 약 5만 명 이상이 모인 가운데 8명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다친 이 공연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사상자를 낸 공연이 되었다. 더 큰 문제는 혼비백산의 상황을 확인하고도 호응을 유도하며 공연을 이어갔다는 것. 뒤늦게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렸으나, 그가 상황을 악화시킨데 일조했다는 현장 관객들의 증언은 이미 일파만파 퍼져나간 상황이다. 울부짖는 관객들을 앞에 두고 이성 팔아먹은 정신 나간 힙합맨을 보며 오늘도 공연장 안전에 대해 되새김질한다.


공연일을 하며 관객 안전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했던 날이 기억난다. 땡볕에 의자 3000개를 깔던 날도 아니요, 강풍에 공연장 안내판이 날아다니는 걸 목격던 순간도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한국대중음악상> 백스테이지 메인 스태프로 일하러 갔었던 김해피. 거기서 나의 주 업무는 리허설부터 백스테이지에 상주하며 시상식에 출연하는 수상자와 시상자, 공연자들을 모두 제시간에 맞추어 스탠바이 시키는 일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필요한 부분들을 체크업 하는 동안 BTS의 참여 여부를 전달받았다. 당시 그들은 두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스케줄상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워하는 친구들의 작은 소리들을 뒤로하고 업무 진행에 필요한 최종 점검을 마친 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빠른 호흡으로 진행되면서 혼자서 여러 팀을 챙겨야 하기에 현장 업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분,초마다 긴장했던 날이었다. 리허설 때부터 시작해서 본식 마지막 세 팀 정도가 남았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고, 물병으로 무의미한 손장난도 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드디어 온 것이다. 바로 그때 내 앞으로 경호원 한 분이 다가와 ‘방탄소년단 대기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혼란의 시작인 줄도 모르고 웃으며 여유를 부렸다. ‘아? 오늘 방탄소년단 참석 안 하십니다!’ 그러자 경호원 선생님이 따라 웃으시며 ‘방탄소년단 참석하십니다~?’로 맞수.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조금 싸해지는 기분을 누르고 ‘하하… 오늘 진짜 안 오세요.’ 손사래를 쳤다.

결국 경호원 선생님은 두 마디 말로 이제 막 의자에 앉은 나를 일으켜 세워 새로운 막을 올렸다.

‘제가 방탄소년단 경호팀입니다. 10분 뒤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jpg


…뭐랄까?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알싸-하고 차가워지는 경향이 있다.

다급하게 국장님께 전화를 걸던 내 손과, 수화음이 두 번 즈음 울리던 찰나에 삐걱삐걱 머리를 굴려 상황 파악 완료. 현재 여분 대기실 없음, 대신 아티스트 자리 비운 방 하나 있음, 너저분함, 케이터링 위층에 있음, 국장님께서 전화받자마자 ‘해피씨! 미안해! 부탁할게!’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짐. 아, 네, 그, 저, 오케이…

당황할 시간도 없이 순발력에 부스터 장착하고, 기존 대기실 이용자에게 수화기 너머로 고개를 잔뜩 조아리며 양해를 구하는 일이 가장 우선이라 판단했다.

“선생님 정말 실례합니다. 제가 모든 물건 소중하게 옮겨두고 다시 그대로 복원시키겠습니다. 정말 아주 잠깐만 대기실 좀 빌려도 될까요? 아티스트분들 메이크업만 살짝! 하고 나갈게요. (엉엉 제발요.)”


그렇게 원래 대기실 주인들의 짐을 가장 큰 옷장 안에 보관하는 것으로 대기실 정리를 빠르게 마무리한 것은 간혹 급하게 방청소를 했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였다. 위에서 쉬고 있던 스태프들에게 케이터링 물품을 이것저것 넉넉히 요청하여 바구니에 담고 음료를 줄 세워 겨우 대기실 구색을 맞췄다. 당시 내 숨은 거의 들숨들숨의 연속이었다. 이를 두고 '대환장 들숨들숨 에피소드'라고 하겠다. 곧바로 도착한 BTS 멤버들을 그 방으로 안내한 후에야 제대로 된 날숨을 뱉을 수 있었다. 시상식이 무사히 끝나고 나서 드디어 이 당황스러운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됐다. 작은 규모의 시상식에 예측 불가하게 큰 사이즈의 팬덤이 모인다면 모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 현장을 총괄하시던 국장님과 메인 작가님 외에는 누구도 BTS가 이 자리에 온다는 사실을 몰랐던 가장 큰 이유였다. 팬들에게는 아쉽겠지만 아티스트와 관객, 스태프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말에 울고 싶을 만큼 심장이 오그라들었던 시간들이 나름 아름답게 역재생되었다. 내게 본능적으로 내재되어 있던 책임감이 얼마나 빠르게 튀어나왔는지, 그날의 나를 주기적으로 칭찬해주기로 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작전에 여전히 감탄을 한다. 누구라도 그랬을 일이라 생각하면서도 꽤나 빈번한 공연장 안전 관리 부재를 뉴스에서, 그리고 실제로 접해오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트래비스의 공연장 압사사고와 그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공연장 질서 관리에 발생하는 오류는 규모와 관계없이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다. 열광하는 것에 모인 사람들이 있는 장소이고, 사람들은 그 대상 앞에서 쉽게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질서 관리에 허점을 만들어서도, 보여서도 안 된다. 한국대중음악상의 담당자들은 당시 질서 관리가 어려웠던 허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철저하게 숨긴 것이고, 정신 나간 힙합맨은 그 허점에 불을 지피고 부채질까지 한 것이여.


펜스를 무너뜨리고 달려드는 사람 떼를 본 적이 있나요…?

멀리서 지켜볼 뿐인데도 느껴지는 아찔한 공포심에 뛰지 말라는 말을 절규하듯 외칠 정도였다. 지정 좌석이 있는 곳에서도 질서가 무너지는 게 공연장인데, 비지정 좌석인 공연장에서는 어떨까? 미흡한 사전 준비와 몰려든 인파를 통제하지 않아 벌어진 2014년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는 대표적인 공연장 ‘인재사고’로 꼽힌다. 환풍구 철제 덮개 위에 올라서 야외광장 공연을 보던 상황이었고, 덮개가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되어 많은 사상자를 만들었다. 이에 재판부가 해당 공연 관계자들에게 실형을 내린 것에는 이유가 있다. 공연장 안전에는 관객 개개인의 주의에 앞서 우선되는 안전함은 온전히 기획, 제작, 운영 스태프들의 몫이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들 자신에게 주어진 안전 관리에 소홀할 때, 관객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관객들에게는 관계자들이 꾸려놓은 안전 관리 체계만이 안전한 공연 관람을 보장하는 전부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현장 운영에는 빈틈이 많다. 그 안에서 '멘탈 챙겨!'라는 말보다 '이성 챙겨!'라는 말을 더 아로새기는 스태프 김해피는 정신 나간 힙합맨이 만든 참극에 2년 전 이성 붙들어 매느라 힘들었던 백스테이지를 떠올렸다. 공연장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안전민감인으로 거듭나게 한 ‘대환장 들숨들숨 에피소드’는 아주 값진 경험으로 남았고,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때마다 압사사고가 무서웠던 중학생 해피는 이제 공연장 안전에 일조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 공연장을 다니던 내 모습이 그랬듯, 앞으로 내가 만날 모든 공연의 관객들이 아름다운 추억만 한아름 안고 돌아가기를 바라본다. 그렇다. 오늘과 모레 큰 공연을 앞두고 셀프 안전 기강을 잡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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