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Korea
정말 가치 있는 일은 공짜입니다.
진리는 의외로 간단하고 뻔합니다. 누구나 어디에서 들어봄직한 말이죠. 저는 세상에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줄을 쓴 이후로 더더욱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누리고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그랬죠. 저는 운이 좋은 편이긴 합니다만 확실히 주변을 둘러보면 공짜인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중 대다수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들이죠. 우리는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돈 주고 갖거나 누리는 데에 익숙해져 버려서 공짜로 무언가를 제공받는 것은 오히려 빚지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들이죠. 뻗어낸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나무와 꽃, 테라스 자리에 앉아있을 때에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 지나다니는 사람들… 그 외에도 찾아보면 무료로 여는 전시들이 참 많더라고요. 대부분의 작가님들은 본인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을 환영하시고요. 평소에 팔로우하고 있던 분이라면 방문 일정을 맞추어 가서 작가님을 직접 만나 뵐 수도 있어요. 서울에 살다 보니 기회가 닿는 대로 작가님이 오신다는 시간에 맞추어 가서 작품 앞에서 한참 같이 이야기하고, 조심스레 제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요. 작품 앞에서 생생히 느껴지는 것들은 그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잊고 싶지 않아서 핸드폰 메모를 하다가 요즘은 다이어리를 적어버리곤 해요. 손으로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쉽게 고칠 수 없지만 나만 보는 글이니 그냥 막 휘갈기거든요. 그런 자유로움이 저에게는 그림처럼 좋습니다. 전시 후기를 쓴 글은 가끔 작가님들께 보여드리면서 사인을 받기도 하고, 함께 사진도 찍기도 해요. 한 번은 작가님이 직접 제 캐리커쳐를 그려주시기도 했고, 다른 작가님은 제 글을 두고두고 보고 싶다며 사진을 찍어 가신 적도 있어요. 롯데백화점에서 했던 밸런타인데이 행사에서는 간 날이 밸런타인데이라 밸런타인 칵테일 시음과 함께 브리치즈 플래터도 맛볼 수 있었어요. 함께 연합 전시를 진행하는 다른 작가님들의 작품도 함께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작가님도 있었고요.
가끔은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쉽게 잊고 싶지 않아서 틈틈이 남겨둔 글을 SNS에 남기다 보니 작가님이 태그를 타고 들어와 저에게 댓글을 남겨주시기도 합니다. 혹은 메시지를 보내주시기도 하고, 꼭 본인이 전시장에 있을 때에 다시 방문해 달라는 영광스러운 일도 있을 수 있죠. 어쩌면 작가님이 제시간에 맞추어 오시겠다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네, 이렇게 작가님이 저를 기다리셔서 전시장을 다시 찾아가 한 시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다 온 적도 있었죠. 이미 사인받은 포스터에 작가님과 이야기했던 내용 중 기약할 수 있는 꿈을 한 줄 더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이 과연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에 산 포스터일까요, 작가님과의 시간일까요? 정말 마음이 동해서 하는 일은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기꺼이 참을성 있게 만들죠.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기다리는 것은 콘서트장 앞 야외에서 벌벌 떨면서, 혹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3시간을 기다리고서도 공연장 안에서 2시간을 내리 뛰어놀다 들어와도 역시 오늘 공연도 최고였다 하는 것처럼요. 모두에게 이런 순간이 자주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순간이 이럴 수는 없겠지만요.
방금 전에는 종종 가던 서점에서 원래 앉던 자리가 만석이기에 어색한 발걸음을 돌려 스쳐지나 만 갔던 아동용 도서 쪽으로 갔다가 햇살이 잘 드는 넓은 소파 자리를 찾았습니다. 여기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는 하나 편안하게 책을 읽고 쉬다 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둔 것이죠. 그곳이 저에게 좋은 장소일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무언가를 얻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오늘 아침에 쓰다 만 일기장을 마저 쓰고, 일행과 밥 먹으면서는 하지 못한 이야기를 여유롭게 나눌 수 있어서였습니다. 모두 공짜입니다.
책을 쓰겠다고 앉아서 노트북을 펴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도 봅니다. 이러다간 꼼짝없이 거북이처럼 무거운 짐가방만 들고 나른 셈이 될 수도 있으니 일단 딱 2분만 써보자고 생각합니다. 일행이 다음 일정을 가기 전까지 있다가, 오후 햇살이 더 이상 비치지 않을 때까지 빛이 드는 아까 그 소파에 돌아가 앉아볼까 해요.
보세요, 저는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공짜는 어떤 것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