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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Feb 24. 2024

영업 마지막 날입니다.

같은 지붕 밑에서 자란 동생의 마음도 알기 어려웠다. 바스러져가는 그녀의 영혼을 살리고 싶었다. 마치 손발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를 살리듯이 말이다. 공부만 잘하면 한국사회에서 성공한다는 잣대에 묶여 불안증과 신경쇠약이 그녀를 찾아왔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성공공식은 없다고,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라고,  함께 작은 성공이라도 만들어본다면 동생의 영혼도 그리고 나의 영혼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시작했지만 내 인내심은 역부족이었다. 

한 지붕 밑에서 자란 자매이지만, 함께한 시간이 길었다 하여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데엔 무한한 노력이 든다. 글을 써 내려가는 시간만큼만 자신을 알게 되듯 '이해'라는 단어 속에 지난한 과정의 시간이 어려있다. 내 이야기를 쓰게 되다면 나를 알게 되고, 곁에 있는 가족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들에 대해 알게 된다. 제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동생을 살릴 수만 있다면, 동시에 나도 꽃피듯 살아날 것만 같았다. 글쓰기라는 믿는 구석에 기대어 그녀와 함께 여왕의 오후라는 가게의 이름을 짓고 간판을 걸고, 페인트를 칠했다. 


"여왕의 오후 마지막 날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처음으로 단체 주문이 들어왔던 날, 동생이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는구나 했다. 내게 남은 인내심이 없어 다시 동생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었던 지라 가게에 출근하지 않겠다고 했다. 동생이 잡아주길, 내게 전적으로 기대해 주길 바랐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서 일어서겠다고 내게 외쳤다. 매장의 마지막 날이 올 거란 예상을 하지 못했다. 매장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동생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이 "밥 사줄게" 뿐이다. 밥을 사준다는 말을 하면 얼굴을 볼 수 있다. 얼굴을 보고 가만히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터인데, 언니라는 입장에서 조언만 신나게 하고 돌아오지 않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중이다. 두 해 먼저 태어났다고 해서, 2년이라는 시간을 먼저 겪었다고 해서 삶에서도 언니인 것은 아니다. 살아보니 매일이 처음이라, 내게도 그저 오늘이 처음일 뿐이다. 순전히 운으로 그녀보다 먼저 태어났을 뿐이다. 

 메뉴를 정하다 보니, 지난주부터 술도 고기 먹지 못한단다. 나 또한 크론병이 의심되는 상황이라 집 밖 음식 무엇을 먹어도 복통이 심하니 먹기만 하면 아픔이 밀려와 식욕이 없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만나기 위한 빌미다. 우린 뭘 먹으려고 만나는 건 아닌 것이다 

충고하지 않겠다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공감만 해줘야지. 위로받으면 눈물이 난단다. 매장 그만둔다고 하니,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 시즌에는 꼬빼기도 보이지 않던 단골들이 아쉽다고 연락이 왔단다. 아쉽다고 말할 시간이 있으면 주문을 한 건 하지. 손님이 단 1명도 오지 않던 3주의 시간은 동생 혼자 묵묵히 보낸 그녀 만의 것이다. 조언이 아니라 들어줌이 필요할 게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 여왕이 오후 문을 열고 들어오면 심장이 죄어오기에 주의를 분산해 보려고 열었던 유튜브와 온기 없는 주방, 말할 이가 아무도 없는 공기에 대해서 내게 털어놓을 수 있게 자리를  깔아주면 된다. 


 우린 즉석 떡볶이를 먹고 흩뿌리는 비를 맞으며 길 건너 꽃시장 온실 매장으로 향했다. 작은 레몬 나무에 달린 레몬을 만지작 거리며, 마들렌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마들렌을 비롯해서 동생이 만들던 영국식 제과의 과정에서 핵심은 레몬이다. 개당가가 만만치 않은 레몬을 사면서, 이 마들렌을 부디 누군가 사가길 빌었었다. 만들어두고, 팔리지 않고, 보존제가 무엇도 들어가지 않은 마들렌을 버린다. 남김없이 버리면서 주방에서 주저앉았을 게다. 함께 하던 6개월 동안에는 그녀가 마들렌을 버리는 체험을 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 나의 배낭에 마들렌을 가득 채워 집으로 가져왔었다. 

"레몬 나무 키우고 싶다."

동생의 문장은 명랑한데, 내 귀엔 시다 못해 쓰라리다. 상처 위에 레몬즙을 뿌리면 이렇게 쓰라릴 터이다. 여왕의 오후 테마색은 병아리색과 민트색이다. 포트넘 메이슨처럼 민트색을 고집하던 동생에게 식욕과 소비욕 증진을 위해서 레몬색을 권했더랬다. 매장 벽이 레몬색이라, 비싼 페인트를 사용한지라 매장 밖에서 보면 따스한 느낌이다. 관리비를 낼 수 없어 겨우 내 난방을 틀지 않았다고 했다. 구움 과자들이 건조해질까 원래도 난방을 가동하기에 조심스러웠었는데, 난방비가 부담스러워 추위를 많이 타는 동생은 싸늘한 여왕의 오후를 만들고 있었던 게다. 


"망한 거야."

망한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단 하나의 조언을 건네어본다. 경력을 잇고 처음 내게 주어진 일은 복사와 출력, 스캔이었다. 프린터기 앞에 서서 무너지던 나를 부여잡았던 건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란 되뇜이었다. 망한 적 없다. 경력이 단절된 적도 없다. 우린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천연색의 레몬이 맺히는 날이 오기 위해선, 거칠한 레몬 나무 둥치를 일으켜 세워한다는 사실을 안다. 끝날 때까진 끝이 아니다. 


사진: UnsplashHanne Hoogen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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