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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씨 Nov 10. 2024

자식의 이름을 파는 여자들

"세상에서 제일 귀하지. 걔가 아들이 아니었으면 나는 또 낳았을 것이야. 모든 걸 다 해결해 줬으니 얼마나 고맙니." 

남편 생일이라고 전화를 걸은 거였는데 분노가 끓어 오른다. 고속터미널에서 환승을 하다 바닥이 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 선택한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생일이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낳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라던 등떠밈이 싫어서 먼저 전화를 했더니 이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어머니는 자신감 있고 힘 있게, 80의 그녀 생 중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말한다. 못 들은 걸로 치고 싶고, 미친 듯 소리 지르고 싶다. 이게 뭐 하시는 거냐고 말이다. 아버님이 떠나시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그녀에게 아쉬울 게 뭐가 있겠는가 싶다. 평생에 걸쳐서 그녀가 쌓아온 저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을 내 머리만 한 망치를 들어 올려 산산이 부수고 싶다. 


'국제학교 다니면서 사교육 없이 아이비리그 보냈어요.' 엄마들에게 육아 교육을 한다는 한 작가의 블로그 글을 보다가 증오에 또 불이 붙었다. 그녀의 모든 블로그 글을 뒤적거린다. 역시 남편이 의사다.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낸 건 남편의 돈이고, 국제학교에 보낸 것도 남편의 돈이며, 사교육비까지 다 포함해서 어마어마한 학비를 받는 게 국제학교인데, 그녀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의 부모교육을 통해서 자신의 아이를 아이비리그에 보냈다고 한다. 

사기다. 국제학교의 실제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향한 사기다. 공교육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에 대한 기만이다. 그녀를 보며 작년에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 했던 학원 원장을 떠올렸다. 이름을 세탁하고, 자신의 실력을 세탁하고, 자기 아이들은 최신 시설의 국제학교에 보내면서 학원의 아이들은 돈봉투로 보는 여자를 말이다. 자기도 자식 키우는 엄마라며 상담을 하던 그녀. 학부모에게 어쩜 저렇게 애가 이쁘냐며 입에 침을 연신 바르며 거짓말하던 원장이 저지르는 수없이 많은 거짓말들과 같다. 

 


이번주는 남편과 아들이 계속 나와 대화를 나눈다. 아들은 한국 공교육 현장에서 학교 다니는 것,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드니 자퇴하고 다른 나라로 가면 좋겠단다. 남편은 유럽 법인장이 되고 싶은데 회사가 유럽에는 안보 내줘서 속상하단다. 한국서 임원 되겠다고 노력하려면 고생길이 훤하니 쉽게 살고 싶단다. 

 남편은 부디 그런 소리는 본인 엄마에게 가서 했으면 좋겠고, 아들은 부디 입 다물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남편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어머니에겐 은혜로운 존재다. 그러니 속 대로 말했다가는 튕겨 나갈 게 분명하니, 그가 하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잠자코 들어준다. 글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회사 생활하는 게 한국서 맨손으로 임원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냐며 남편의 등을 두드려주는 척을 해보지만 속에선 도대체 언제 성인이 될 거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아이들이 이거 사고 싶다고 하면서 눈치를 본다. 남편은 아이들만 할 때 사고 싶은 건 전부 다 샀는데 자신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주진 못한다며 자학을 한다.

'우리 엄마에 따르면 난 귀한 존재인데.' 

귀한 아들이 고통을 받다니, 이 모순의 상황은 도망가고만 싶을 것이다. 말이 안 되니까 말이다. 

'난 감히 이 어려운 상황을 겪어서는 안 되는 귀하디 귀한 아들이라고.'


남편이 일주일 내내 몸은 집에 있어도 정신은 집 밖에 있고 접대와 회식으로 식사 한 끼를 함께 할 기회가 없어 아들은 나를 만나면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안달이다. 지금 당장 보내달라고, 오늘 당장 외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또는 다니는 고등학교 자퇴하게 해달라고 한다. 

 자책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조기유학 보내거나, 아이비리그로 대학을 보낼 학비가 없는 부모만이 겪을 수 있는 감정, 바로 죄책감이다. 내 살을 팔아서, 내 피를 팔아서라도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을 겪어보지 못한 이가 부모교육을 한다니 콧방귀를 뀌어본다. 웃기는 소리다. 죽을 만큼 아파서 고통스러워보지도 않은 이가, 죽다가 살아 돌아오며 다른 삶을 살아봐야겠다며 처절한 실패와 고통으로 인생의 오만가지 맛을 보지 않아 본 누군가가 감히 조언을 한다면 듣지 말자. 부디 귀 기울이지 말자. 

 자식이 있어서 자동으로 부모가 되었음을 이용해서 부모교육을 하는 그 많은 이들보다, 내게 진짜 엄마가 되라며 실패의 참 맛을 보게 해 주는 오늘이 진짜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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