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되는 부정적인 역사를 끊어내자
죽음은 으레 슬픔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전두환의 죽음만큼은 슬퍼하기 힘든 것 같다. 지난 2021년 11월 23일 전두환이 혈액암으로 투병하다가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를 비롯하여 5.18 당시 계엄군을 동원하여 수많은 시민을 탄압했음에도, 그는 한 마디 사과 없이 세상을 떠났다. 본인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는, 아니 ‘인정’하는 태도조차 없었기에, 그의 죽음은 허망함을 넘어서서 화까지 끌어 오르게 만든다.
나는 단순히 그가 사과 없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함이 아니다. 첫 번째, 그는 역사적으로 잘못한 사실에 대해 인정*해야 할 영역이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두 번째, 인정하지 않은 역사로 인해 일종의 ‘선례’를 남겼다. 내가 잘못하더라도 사과 없이 묵혀두면 그만이라는 것. 세 번째, 이러한 선례로 인해 대물림되는 부정적인 역사가 또다시 반복된다는 것이다.
*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청산’이라고 하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사실 전두환의 행태는 한국의 역사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뒤, 한반도의 숙제 중 하나는 ‘민족 반역자 청산’이었다.
민족반역자들은 국권 피탈 속 나라를 팔았다. 아마 나라를 판 대가는 짜릿했을 것이다. 그저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하찮은 인간들을 일본에 바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러면 누군가 가져보기도 힘든 권력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거지 같은 세상 속에서도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행복도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자신의 안위와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같은 민족 동포를 일본인에게 팔아넘기고, 천황에게 한반도를 바쳤던 민족 반역자들은 죗값을 치러야 함이 마땅했다.
겉모양은 조선인이나 뼛속까지 일본인이었던 이들이 한반도에서 멀쩡히 살아 숨 쉬는 건,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한 마디로, 민족 반역자 청산은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정리하고 민족성을 단결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1948년 국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구성하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켜 민족반역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나라의 제반을 세움에 있어 민족반역자들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 법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반민특위를 반대했다.
미군정을 등에 업은 이승만의 방해 공작은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을 일으키며 극에 달했다. 결국 반민특위는 와해되었다. 반민특위 와해 이후로 민족 반역자는 복권되었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주무를 수 있는 위치에서 마음껏 그 권력을 누렸다.
* 1949~1950년 소장파 국회의원들을 남조선노동당의 프락치(일종의 스파이)로 규정하여 기소 및 구속한 사건.
이는 한국이 역사적 성찰, 평가,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전두환이 12.12 쿠데타와 광주 시민 탄압 및 학살 등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 없었던 행위는 전두환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역사 청산이 어려웠던 한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과도 같다. 한국의 역사적 대물림 중 하나는 바로 역사적 정의 규정과 정리 없이 기득권들에 의해 역사가 조장되어 왔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제대로 된 역사적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들은 여전히 상처를 입거나 분열하곤 한다. 기득권들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들은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해 곪아 터진 상처를 안고 있다.
그러나 뉴스를 보면 전두환의 빈소에 누가 참석했는지, 전두환의 공과를 두고 정치인들끼리 싸우는 모습이 보인다. 역사 청산의 부재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이 국민들의 슬픔과 상처는 기득권이 조장하고 이용한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해서.
어쩌면 기득권들은 전두환처럼, 아니 역사 속 기득권들처럼, 자신이 잘못하더라도 인정하지 않고 권력으로 사실을 묻어버리는 행위를 답습할지도 모른다. 분명 이 행위가 비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일종의 ‘정당한 논리’로 만든 상황은 바로 윗 세대 기득권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역사 청산 부정이다.
아! 이에 대해 저항할 자는 없는가? 이에 대해 슬퍼하고 분노할 자는 없는가? 대물림되는 한국의 부정적인 역사를 끊어내고 한반도의 상처를 가슴 깊이 끌어안을 자는 없는가?
앞으로의 한국이 내부적으로 단결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역사의 대물림을 끊을 바른 정신과 바른 뜻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 나의 나라가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기득권들에 의해 찢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 커버사진 출처 : 5.18 기념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