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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예경 Aug 11. 2023

옷과 치장

에세이



  최근,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 진단명은 ‘봄 웜 브라이트’였습니다. '브라이트'는 비비드 한 순색의 채도가 높고 밝고 강렬한 색이 어울리는 톤입니다. 명도와 채도가 낮은 탁한 색은 밝고 맑은 에너지를 죽이고, 흰색이 섞인 파스텔 톤은 인상을 흐리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원색의 옷을 입어 생기와 발랄함을 어필하라니. 지금껏 무채색 스트릿 패션을 고수한 저로썬 적지 않은 충격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힙스터, 스트릿 패션은 연예인들이 무대 의상으로도 많이들 입으며, 대중적으로 예뻐 보인다는 인식도 무시할 순 없지만, 제가 구태여 그런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은 스트리트 패션은 제 개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스타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죽 질감의 재킷, 테크핏 조거팬츠, 나염 무늬 원피스 등 블랙을 기조로 한 의상들은 어딘가 시크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도발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간 검정이 하얀 제 얼굴과의 대비가 가장 극명하기에 저와 잘 어울린다고 착각했던 것 같습니다. 퍼스널컬러에선 볼에 블러셔를 칠한 것처럼 안색이 좋아 보이고, 인상이 선명해지는 것을 베스트라 봅니다. 워스트색의 경우,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등의 낯빛이 좋지 않다는 표현을 씁니다.



회색 아스팔트 도로나 빛바랜 보도블록 위에서 가장 빛나는 패션, 저는 저를 표현하는 독특한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가 좋습니다. 옷과 치장은 자기만족의 의미도 있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능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자기만족용으로 기능을 할 것이라면, 사람들은 아마 자신의 방 안에서 거울로 그 모습을 보며 만족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제가 평소 주로 입는 스타일과 연관 되어 있습니다.


무채색 스트리트 옷들을 남들이 보기에 개성이 강하며,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좋아 입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알고 보니 그냥 얼굴이 하얗게 질린 상태로 돌아다녔던 것이죠. 그것이 잘 어울린다고 착각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시절 교복은 상·하의가 딥 그린 색이었는데, 그 당시 제 얼굴은, 인상은 다소 어두웠고, 빈말로라도 '얼굴빛이 좋다'라고 말할 순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것도 퍼스널 컬러 영향이었나 봅니다. 차라리 샛노란색이 교복인 예고에 진학할걸 그랬습니다. 적어도 딥 그린색보단 잘 어울렸을 텐데요.





  옷과 치장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 볼까요. 2022년, 패션계에서 분 Y2K 유행 바람은 2023년 현재까지 아직 유효합니다. Y2K란 Year(연)의 Y와, 1000을 뜻하는 Kilo에서 K를 따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2000년대를 풍미했던 스타일인, 무채색보다는 핑크색 등 톡톡 튀는 색채를 활용하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수많은 게시글의 해시태그 ‘#Y2K’의 존재감은 Y2K가 핫한 트래픽임을 알 수 있습니다.


MZ세대는 2000년대의 복식이나 소품들은 다소 촌스럽고 낯설게 느낍니다. 그와 동시에 새로움을 느끼고, 가본 적 없는 과거에서 향수를 느낍니다. 00년생 이후 출생자들도 90년대를 어딘가 낭만적이고, 서정적으로 느낍니다.

그렇기에, 유행에 민감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이 Y2K 패션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2023년 팬톤 올해의 색은 ‘비바 마젠타(Viva Magenta)’입니다. 관념 속에도 비바 마젠타는 일상적인 색이라기보다는 좀 파티의 색에 가까운데, 팬톤은 코로나 판데믹으로 오랫동안 힘들었던 사람들을 위해 삶을 축하하는 의미를 가진 핑크색으로 조금이나마 위로를 건네고 격려하기 위해서 이 색을 골랐다고 합니다.

Y2K 패션 중 쨍한 마젠타 핑크를 쓰는 것이 종종 눈에 들어오는데, 서로 우연히 절묘하게 얽혔다 싶습니다.


이처럼, Y2K 패션은 비비드가 베스트인 제 퍼스널 컬러를 활용하기 좋고, 정제된 미니멀리즘보단 과감하고 개성적인 것을 원하는 저의 미학적 추구 미와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학적 집착, 추구미보단 가장 중요한 건 제가 그 옷을 입음으로써 편안함을 느끼는지입니다. 이는 제가 옷에 갖는 신념으로, 아무리 보이기에 예쁜 옷이라 하더라도, 입을 때 어색하고 불편하다면,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예뻐 보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패션은 제 철학과는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와이드 팬츠요. 와이드 팬츠는 기존 스키니 유행보다 편해서 좋아합니다.

2022년 패션 트렌드로 배꼽 아래 골반에 입는 로우 라이즈 바지와 크롭 상의가 유행했습니다. 헐렁한 바지와 그의 대척점에 있는 짧은 상의가 유행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크롭 패션에 대해 조금 불만이 있습니다.


짧은 상의는 뱃살이 있으면 트렌드를 따라가기가 힘듭니다. 이에 대해, 옷이 작게 나온 것을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내가 살이 찐 탓이야, 라며 자책하는 여성이 있진 않을지 염려됩니다. 그리고, 상의를 짧게 하려면 옷에 들어가는 옷감의 양이 줄었을 텐데, 가격이 일반 상의와 차이가 없거나, 더 비싸다는 점이 조금은 짜증스럽습니다.     


 

종종 여자 옷은 남자 옷에 비해 마감 처리나 질이 떨어지는 데 비해 가격이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에 반해 남자 옷은 여자 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질이 좋고 튼튼하며,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넉넉한 사이즈가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끔은 부러 남자 옷을 구매합니다. 직원의 "손님, 그건 남자 옷이에요." 하는 만류에도, "그래도, 어울리지 않나요?" 하며 기어코 그 옷을 사곤 합니다.


왜냐하면, 예뻐 보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 그 옷을 입음으로써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제 패션에 대한 철학이자 신념이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주로 SNS를 통해 친구들과 소통합니다. 저 또한 예외가 아닌데, 저와 친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SNS는 인스타그램입니다. 예쁜 카페나 유명한 전시회 정보 외에, 인스타 마켓과 광고, 사람들의 게시글을 통해 의류 정보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고,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물에 올리면, 팔로워들은 옷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댓글을 다는 등 인스타그램 내에서의 패션 순환은 계속 이어집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친구와 헤어진다면, 저는 함께 찍은 모든 사진을 삭제하고 그녀의 댓글을 삭제해야 합니다. 그걸 본 다른 친구들은 그녀와의 관계에 대해 어색함을 느낍니다. 옷도 인터넷으로 사는 세상에서, 요즘은 완전히 일대일로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연락할 기회가 줄어든 것 같습니다.


편리한 만큼, 얄팍해지고 낭만이 사라진 세상이 가끔은 씁쓸합니다.      




           

  컬러풀한 색채가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지만, 정적으로 깔끔한 룩은 여전히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렇기에, Y2K 패션이 화려하고 유치하며, 일견 과하다는 인상을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코로나 팬데믹으로 오랫동안 힘들어했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이 변화를 축하하는 의미로 비바 마젠타색과 Y2K 패션에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컨설팅 과정에서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 및 무드, 소재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옷과 치장은 자기만족의 의미도 있지만,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능이 더 강한 만큼, 기왕이면 내게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알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살구뉴스, "Y2K 뜻이 뭐예요?"... 200년대 패션 트렌드가 갑자기 유행한 이유

김지수 기자

2023.01.11.          

중앙일보, ‘잊고 싶었던 배꼽티·깔맞춤…'세기말 패션' Y2K가 돌아왔다’

유지연 기자

20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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