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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예경 Jul 17. 2023

<말차 라떼와 사월의 물고기>

에세이


 봄인 듯 여름인 듯 장난스러운 날씨 속에 재미난 일이라곤 없이, 종종거리던 매일에 지쳐갈 무렵, 과제가 생겼다. 제시된 여행지 중 하나를 골라, 답사를 다녀온 뒤 기행문을 쓰는 과제였다. 자취방과 강의실, 작업실만 오가다 밖으로 나갈 구실이 생겼다, 하면 너무 처량한가. 그렇지만, 나는 그만큼 잠깐의 리프레쉬가 간절했다.     




우연히 같이 수업을 수강하게 된 동기와 함께 다녀갔다. 햇빛이 적당했고, 꽃 냄새도 향긋했다…. 면 좋았겠지만, 그날은 비가 왔다. 습하고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우리의 여행지는,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 서촌이었다. 서촌은 과거, 조선 시대 통역관이나 의술에 종사하던 의관과 같은 중인을 비롯해 뛰어난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런 역사가 있어 그런가, 서촌에서는 유독 전시회와 화랑이 많은 것 같다고, 경복궁역에 내리며 생각했다.              




 

 우리의 첫 경유지는 ‘타이드 워터’ 카페였다. 한옥 콘셉트의 카페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지만, 한옥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빗속에서 인테리어는 고즈넉한 멋을 더했다. 친구는 “비가 와서 오히려 좋다.” 하며 창밖을 가만 바라봤다.


사실, 이 친구와는 친분이 그리 깊은 관계는 아니었다. 같은 학과 동기, 딱 그 정도의 얄팍한 사이는 아늑하고 조용한 공간에 놓임으로써 대화의 물꼬를 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깊지 않고, 조악할 정도로 얕지 않은 사소한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이윽고, 조금 더 내밀한 전남친에 대한 험담이 전개되었다. 한때는 그이의 품 안에 집 짓고 싶던 여자들이 어쩌다 이리되었나. 사랑을 내어줬기 때문에, 돌아오는 분노가 더 커졌나 보다. 그리고, 그런 상처는 본디 내상으로 남아, 남들이 기민하게 알아채기 어렵다.

후두두, 내리는 빗소리와 따뜻한 조명 아래, 한옥의 예스러움 속에서 과거를 얘기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테니까.


이미 다 울고 난 뒤의 담담한 어조의 그 씁쓰름한 이야기는 말차 라떼와 비슷한 맛이었다.    



 

친구가 찍어준 사진.              






 

 이후, 아트스페이스3에서 열리는 <컬러풀 한국 회화- 조화에서 정화까지> 전시와, 갤러리 시몬에서 배형경 작가의 개인전 <無, Be Nothingness>을 관람했다.

컬러풀 한국 회화는 추상작가 8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로, 다소 난해한 작품들에 이해력이 방황했다. 그렇지만, 이런 전시에 갔다는 자체가 오랜만이라 설레었다.


추억 겸, 인증 겸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작은 휴대폰 인터페이스에서 보이는 사진과, 실물의 박력은 확실히 달랐다.





<無, Be Nothingness> 전시는 인체 조각을 통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인간 실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매끈하고 사실적인 대리석 조각상에 익숙해 있던 나는, 거칠고, 우울한 질감의 낯섦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작품 자체도 멋있지만, 작품의 의도를 전달하는 방법 또한 영리해서 감탄했다. 관람객들에게 A4용지를 배포했는데, 거기엔 작품의 의도와 해설이 적혀있었다.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자기 작품을 확실하게 PR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하는 미술은 상업성을 추구하는 것이라, 예술성보단 기술적인 면이 중요하고, 나의 그림이 대중들에게 먹힐지를 생각해야 한다. 쉽게 말해, 내가 그리고 싶은 대로 굴면 도태된단 소리다.


“네 작품은 상업성이 없어.”


교수님의 말. 잘 그리는 것과 잘 팔리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며 다그치던 그 말. 자본주의적 세계 속 그 언어에 약간의 저항감을 느꼈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도 모르게 그런 것에 조금 지쳐있었다는 것을, 자기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들 앞에서 깨달았다.


나는 예술인 이기 이전에, 자유인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우리는 안국에 있는 카페에 방문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안국은 서촌은 아니지만, 서촌 근교에 위치해있으므로-사실은 카페의 이름과 분위기에 반해 가고 싶었던 게 더 컸지만-기행문에 포함했다.


서촌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걸었나, 카페가 골목길에 숨겨져 있어서 입구를 찾지 못해 빙빙 돌았다. 친구가 그 모습을 보고 “돌고 돌아, 사월의 물고기네.”라고 말했다. 표현이 시적이라 웃음이 나왔다.

그렇구나, 돌고 돌아 사월의 물고기. 마침 지금은 또 사월이고, 비가 오네. 모든 생명체는 물에서 나와 갈라졌다지.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사월의 물고기였을지도 모른다.     

      




감각적인 분위기의 카페에 앉아있자니, 본가로 날아간 카드 명세서를 보고 왜 이리 카페를 많이 가냐며 채근하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오늘날의 카페는 현대인의 거실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만원이 좀 안 되는 돈을 내고 음료, 전기, 앉아있을 공간을 대여하여, 그곳에서 공부, 여가, 만남 등의 활동이 이루어진다.



익숙한 환경이 아닌 새로운 넓은 공간에선 창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과제 등 특정한 행동을 위한 환경 조성은 카페가 최적화되어있다.


카페는 이제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 공간이라고 인식되며, 카페에 돈을 투자하는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는 나의 가치관과는 다르게, 이를 기성세대인 부모님께선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우신 듯하다.     



주문한 음료를 기다리며, 2층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경복궁을 사이에 둔 서촌과 안국, 이 종로구의 예스러운 풍경이 참 좋으면서도, 서울이라는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밖에서 누군가를 만날라치면 잠깐 앉아 쉬어갈 수 있는 벤치나 공원이 적은 것은 이질적이라 생각된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려면 필히 근처 카페로 향해야 한다는 점이 말이다.


카페 이용자 중 20대 젊은 청년층은, 본인의 집에서 공부할 공간을 갖지 못할 확률이 높다. 닭장 같은 방, 숨이 턱 막히는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이 싫어, 밖으로 나왔더니 꽁으로 내 몸 하나 뉠 곳은 없고, 결국 이리저리 방황하다 목이 마르니 그냥 카페로 오게 되는 것이다.    


휴식의 공간, 응접실, 작업공간 등 이런 기능은 공원과 벤치, 도서관이 기능해야 하는데, 한국은 카페라는 공간에서 소비를 재촉하며 이루어지는 듯싶다.


그런 단상과는 별개로, 사월의 물고기 카페는 훌륭한 미적 감각의 인테리어가 돋보였고, 쑥 크림 라떼는 제법 입에 맞았다. 빨대로 채 녹지 않은 얼음을 달그락거리다가, 우리는 슬 나가기로 했다.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쳤지만, 그 사이 햇빛은 사위어 있었다. 저녁시간 무렵이었다.

멎은 비가 되레 아쉬웠다. 얄팍한 사이에서 형성된 라포르가 오늘을 기점으로, 저무는 햇빛처럼 사위면 어쩌나 싶은 아쉬움 또한 들었다.


이런저런 아쉬움 속, 우리는 안국역 3번 출구에서 헤어졌으므로, 이로써 나의 기행문의 여정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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