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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예경 Jul 19. 2023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전시 비평>




 친구들과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 전시회를 방문했다. (사실, 방문한 지는 좀 오래됐는데, 어쩌다 보니 글을 이제야 올리게 되었다...) 맥스 달튼은 1975년생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다. 그가 유명세를 얻게 된 계기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감독이었던 웨스 앤더슨 감독의 아트북 일러스트 작업이었다. 그렇기에, 전시 홍보 포스터나, 입장할 때 그의 대표작인 부다 페스트 호텔 그림이 눈에 띈다. 

    




 ‘우리가 사랑한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전시의 부제에서 이 전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는 SF영화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와, ‘007(50주년 특별 상영회에 실제로 쓰인 포스터가 전시되어 있다.)’, ‘이터널 선샤인’, ‘기생충’ 등 다양한 장르 영화 속에서 영감을 받아, 그를 오마주 혹은 패러디의 형태로 작품을 그려냈다. 


그림 한 장에 담긴 영화라니. 영화의 메시지, 미장센, 구도, 색감, 그 모든 걸 하나의 그림으로 응축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작업이다. 하지만, 달튼은 영리하게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반으로 잘라, 묘사하는 등 공간을 재구성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해 2시간짜리 영화의 서사를 훌륭히 담아내었다. 영화 속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은,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채우는 센스는 미술학도로써 배울만하다고 느껴졌다.     





달튼은 대중문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작품은 어렵고, 고상하다기보단 친숙하고, 빈티지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 또한 모든 세대가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영화를 선별하는 과정에서부터 고심한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굉장히 디테일에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아볼, 숨은 디테일을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영화 속 인상 깊었고, 위로받았던 그 순간들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소통하고 싶었다. 


감상을 글자로 적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있어 가장 익숙한 언어인 그림으로 말이다. 집요할 정도의 디테일은 분명, 그를 위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었을 테다.


나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부분이, 누군가에게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한 장면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와닿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달튼의 그림은 빛바랜 톤의 색감이 특징적이다. 사실, 세상엔 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색은 우리의 뇌가 빛을 이해하는 주관적인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물체의 색은 감정에 영향을 미쳐서, 하루의 시간, 빛의 온도에 따라 같은 물체일지라도 다른 느낌을 선물한다. 달튼의 그림을 보면 색감에 집착하는 작가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날카로운 재능에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가, 그 안에 내포된 의미에 아련해지는 따뜻한 색감에 젖어, 종지에는 그의 작품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봉준호 감독 영화를 좋아해, 여러 봉준호 감독 영화를 그린 그림들을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영화 ‘기생충’을 모티프로 한 다수의 작품은 이번 국내 전시회를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다고 한다. 기생충은 맥스 달튼이 처음으로 본 한국 영화라고 하며, 기생충을 20번 봤다는 일화도 있다.        


  





 이후, 영화를 소재로 한 작품 외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부문에서 맥스 달튼이 사랑했던 아티스트 여러 아티스트의 앨범 표지, LP 커버를 다시 그려내는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사실, 맥스 달튼은 미대가 아닌 음대를 졸업했고, 한때 프로 뮤지션을 꿈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에 거장들의 음악이 흐르는 듯,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느낌과 수많은 음악가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애착이 보였다. 



   

맥스 달튼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자면, 가장 최신의 매체인 디지털 드로잉을 통해, 오래되고 낡은 추억을, 이야기를, 낭만을 노래하는 화가라 할 수 있겠다.        




                

 훌륭하고 센스 있는 전시였다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니 무슨 무슨 영화를 모티프로 한 그림이 걸려있다는 설명이 사전에 없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 재미를 느꼈지만, 접해보지 않은 영화를 모티프로 한 그림에서는 몰입도가 떨어지고,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힘들다.


특유의 아기자기함과 섬세함이 관람 포인트인데, 영화를 모르면 그 매력이 전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미가 없다거나, 흥미가 없는 그림은 건너뛰다 보면, 전시가 금방 끝났다는 인상을 받는 관람객이 나올 수 있다는 한계점이 느껴졌다.     




그리고,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들의 태도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전시회라는 것은 예술가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전시회에 리뷰, 입소문이 있어야 그 전시회가 흥행하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아예 전시회를 브이로그 형식으로 촬영하거나, 걸린 작품들 대다수를 촬영해 그대로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해당 전시를 관람하게 될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한 다기보단, 내가 이런 곳에 다녀왔다는 과시욕이 더 드러나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든다. 


이러한 부분은 자신의 무신경함이 전시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 있다는 대중의 인식이 필요할 듯싶다.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인 63아트는, 63빌딩 내 60층에 위치해 있다. 작품에서 눈을 돌려, 전망대를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이러한 전시회장의 위치 특수성 또한 내게 재밌게 다가왔다. 구역별로 팬톤 컬러로 나눈 것도, 미학을 추구하고 집착하는 작가의 성격에 걸맞게 잘 구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작품들을 감상하며, 영화를 재밌게 봤던 감흥을 떠올릴 수 있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의 순간들 속에 새로운 색을 입히는 예술가의 매력에 한껏 취해, 도록을 구매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를 보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건, 영화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기 작품에 대한 자신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관객들은 한 영화를 수십 번씩 보고, 분석하며 자신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기억하고, 조금 더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임하면 좋겠다.


해당 전시는 올해 10월 29일까지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기간 내에 다녀와도 좋을 것 같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한국에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맥스 달튼의 매력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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