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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cleGrace Sep 20. 2022

당신의 정신 건강은 몇점?

#정신건강 #스타트업 #스트레스 #스트레스대처 #코로나블루 #우을증

약간 심각한 우울증. 나는 이런 일이 나에게 닥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왠만한 어려움은 불굴의 의지로 이겨나가고, 시련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힘이 나는 스타일이다. 그런 내가 2020년은 1년 내내 남친을 만날 수 없었다. 게다가 나이가 많은 부모님에게 혹시나 코로나를 감염시킬까봐 가족들을 자주 볼 수도 없어 그야말로 지독한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했다.

그러다 2020년 12월 5일, 천사같은 유기견을 입양했다. 순한 곰돌이 같은 반려견와 함께 지내게 되자 오히려 더 집에 있고 싶어졌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온, 오프라인을 병행하던 우리 회사는 2021년 2월, 100% 온라인 근무로 변경을 했다. 그렇게 재택근무의 참 맛(!)을 느끼게 되면서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코로나 블루가 나를 집어 삼켰다.

나의 증상은 이러했다. 오전에 팀원들과 미팅을 마치고 나면 침대로 몸을 던져 하염없이 유튜브를 봤다. 그것도 지겨워지면 인스타를 한다. 멋진 사람들을 덕분에 부러운 마음이 한껏 차오른다. 다시 알수 없는(?) 슬픔이 몸을 휘감을때면 강아지 고양이를 검색해 귀여운 동물들을 보며 행복주사를 맞는다. 그렇게 정신건강을 위해 시간을 쓰다보면 어느정도 힘이 난다. 그렇게 힘이 나면 순수한 눈망울로 무한한 사랑을 보내는 진짜
내 강아지를 껴안고 뒹굴 거린다. '아, 이제 살것 같아!' 이제 배가 고프다. 요기요에 주문을 한다.

노트북이 아무리 많아도 머리는 하나다.


코로나 블루가 100% 원흉이 아니다. 불행히도 나는 스타트업 대표다. 더 큰 원인은 바로 내가 회사를 5년째 수익이 없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땀과 노력을 공드린 회사는 나의 우울증의 시작이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그 우울증이 집어 삼킨것도 바로 우리 회사다. 개발자 2명, 디자이너 2명이서 열심히 우리의 서비스를 만드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몇 개월째 뒹굴거린다. 팀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반짝 힘을 내 미팅을 하고 나면, 다시 바람빠진 풍선 마냥 풀이 죽는다.

'수익이 나는 회사'를 만들어야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잘 되지 않아 모른체 하고 싶은 것이다. 더 정확히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고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다. 그래서 100% 온라인 근무로, 재택근무로 회사 정책을 바꾸고 집안으로, 다시 가장 따뜻한 침대 속에 꽁꽁 숨어버렸다.

이런 생활을 8개월 반복하다가 2021년 10월 친구들에게 SOS 요청을 보냈다. 어디라도 함께 놀러가자고 했다. 주로 친구들을 집에 초대했다. 한강, 북한강, 애견까페, 산으로 들로 이곳 저곳으로 다녔다. 우리는 캠핑을 하거나, 함께 밥을 먹거나, 함께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함께 타거나, 꽃구경을 다니며 자연속에서 함께 했고, 그렇게 친구들과 있다보면 힘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침대 생활 대신 친구들과 자연 속으로 도피한것에 불과했다. 친구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잠시나마 해결책을 찾는 '척'하며, 반짝 힘을 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봤자,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웃어도 웃는게 아니다


사실 5년의 세월동안 하루에도 수십번 후회와 희망으로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망을 가지고 전진해온 회사는 나에게는 자식과 같다. 자식이기도 하고, 어쩌면 실패한 나 자신 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돌아와서 한푼도 없을때 부모님에게 빌린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희망에 부풀어 우리 서비스가 출시가 되면 시장을 선점하는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가 자리를 잡는것은 넉넉히 잡아도 3년이면 충분 할꺼라고 생각했고, 부모님께 효도하는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이런 기대감은 투자들에게서 검증을 받았다. 처음 부모님께 빌린 돈이 떨어질 때 쯤에, 천사같은 투자자를 만났다. 그 돈으로 열심히 개발하다가 또 돈이 떨어질때 운 좋게도 정부 지원사업에 합격을 했다. 여러번 정부 지원사업으로 구사일생하며 버텨가다 또 돈이 떨어지자 이번에 과감하게 신용보증기금에서 2억 대출을 받았고 투자도 또 받았다. 그렇게 5년간 약 6억원의 돈을 썼다. 개인 대출도 여러번 받았고, 남자친구의 도움도, 부모님의 도움도 위기의 순간마다 받았다. 그렇게 운이 좋은 나는, 5년의 시간을 희망을 가지고 버텨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만족할 만한 다운로드와 사용자수 대신 다달이 나가는 직원들 월급과 대출 이자, 세금으로 쪼달리는 비참한 대표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아! 이번달도 돈이 없네! 어디서 구하지?' 발을 동동 굴리며 대출을 받아 월급을 보내고 나면 힘이 풀려버린다. '이번달도 어떻게든 넘겼네.' 이렇게 쫄아버린 마음과 늘어나지 않는 다운로드와 수입에 마음이 더욱 쫄아든다. 자신감있게 새로운 투자자 앞에 설수도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고 꽉 막힌듯 하다.

우리 회사에 매달 들어가는 월급과 비용들은 대략 평균적으로 천만원 안쪽이지만, 이 돈이 짖누르는 무게는 절대 작지 않다. 다 자기 그릇에 맞게 성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회사로 남들보다 더 어려워 하는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불쑥 불쑥 올라오는 자괴감... 어느순간부터 쪼그라들은 내 심장은 스스로를 향해 비수를 꼽고 있었다. 투자자도 팀원들도, 부모님도, 남자친구도, 친구들도 아니라, 나를 제일 괴롭히는 사람은 바로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런 세월을 보내고 있을때 2022년 4월, 디캠프에서 창업자의 정신건강에 위험 신호가 있다는걸 발견하고 정신건강 조사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나는 심각한 우울증으로 병원을 방문해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기 전부터 내가 우울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도 뭔가 진단을 통해서 확실해지니, 속이 시원해졌다. '아, 나 정말 우울증이구나.' 아래는 나의 정신건강 설문조사 결과다.
            

창업가 정신건강 설문 조사 결과


우울 : 15 (약간 심한 수준)

귀하는 심리검사 전 2주일 동안 중등도 수준의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수준의 우울감은 신체 면역력이나 심리적 대처자원을 저하시키고, 직업 및 대인관계 등 일부 일상생활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울감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사소한 환경적 변화나 스트레스 사건에도 증상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우울함의 정도가 심해지는 경우, 혹은 기분 저하와 회복이 반복되는 경우, 심리 상담센터를 찾는 등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실 것을 권합니다.


수면 : 20 (중등도 수준)

귀하는 중등도 수준의 수면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잠에 들거나 잠을 유지하기 어렵고, 수면의 질이 떨어져 자고 일어나도 불만족스럽게 느끼며, 수면 문제로 낮 시간에 기능 저하를 보이거나 밤에 잠을 못 잘까봐 걱정할 수 있습니다. 귀하는 이러한 수면 문제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정신건강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실 것을 권합니다.


스트레스 : 22 (심한 수준)

귀하는 주관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가 심한 수준입니다. 감정 조절이 어렵고,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며 압도되거나 불안해지는 등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스트레스 수준이 높습니다. 이로 인해 직업 및 사회적 기능 등 일상생활을 평소처럼 유지하기 어렵고, 평소 사용해왔던 스트레스 해소법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건강전문가와 상담을 통해 당면한 문제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전문적인 도움을 구해보실 것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문제중심적 스트레스 대처 : 62 (높음)

귀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 세우기,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취하기, 정보 얻기, 새로운 기술 습득 등과 같이 문제 상황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100명 중에 상위 16명 안에 들어가는 높은 점수로, 스트레스에 문제 중심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자원이 풍부함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 대처방식은 문제 해결 과정에서 많은 노력을 요하고, 그 과정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게 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따라서 정서중심적 대처와 같이 현재의 스트레스를 이완하도록 돕는 다양한 기법을 함께 활용한다면, 스트레스 상황을 버티고 해결해 나가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정서중심적 스트레스 대처 : 81 (매우 높음)

귀하는 스트레스에 수반되는 정서를 관리하고 정서적 고통을 완화하도록 돕는 정서중심적 대처를 다른 사람보다 매우 자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100명 중 3명 안에 들어가는 높은 점수로, 정서중심적 대처가 풍부하게 개발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정서중심적 대처에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긍정적 의미 찾기, 농담과 유머 사용하기, 사회적 지지 활용하기 등이 있습니다. 다만, 정서중심적 대처만 사용하게 되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고,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활용하기 어렵다는 제한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중심적 대처방식 등과 같은 다른 대처방식과 함께 활용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데 더욱 도움이 되겠습니다.


역기능적 스트레스 대처 : 59 (보통)

귀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인, 목표 포기, 부정적 정서표출, 음주 등의 역기능적 대처전략을 다른 사람들과 유사한 정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역기능적 대처는 문제로부터 주의를 돌려주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잊게 하지만, 과도하면 스트레스 대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문제중심적 대처와 정서중심적 대처를 다양하게 개발하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나는 스트레스가 심하여 우울증을 앓고 있고, 수면에 문제가 있다. 결과를 보면 나는 정서중심적 스트레스 대처를 3%안에 들어갈 정도로 잘 대처하고 있고, 문제중심적 대처도 16%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잘 하고 있는데 얼마나 더 스트레스 대처를 잘 할 수 있단 말인가? 스트레스의 근원인 회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수 밖에 없다.

2021년 말에 팀원들에게 2022년 3월까지 투자를 받지 못하면 우리 회사가 생존하는것은 힘들것이라고 나누었다. 그리고 투자를 받지 못했다. 그러자 2022년 2월 디자이너가 나갔고, 3월에는 개발자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9월을 끝으로 막내 디자이너마저 나가겠다고 했다. 디자이너들은 상사가 있는 회사로 가서 디자인을 더 배우고 싶어서 나가게 되었고, 팀장 개발자는 나가서 창업을 했다. 이제 마지막 업데이트를 담당하고 있는 개발자 1명만 남았다.

과연 여기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한 방법은 3가지다.  

매출을 만드는 방안 : 외주 프로젝트를 따고 프리랜서들을 고용해 회사를 생존 시킨다. 이 방법은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다. 또 추가적인 노력도 많이 필요하고 프리랜서 관리가 어떻게 될지 묘연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방안 : 우리 회사를 중심으로 고객 커뮤니티를 만들수 있도록 지속적인 콘텐츠를 생산한다. 개발자 1인과 계속 업데이트를 해 나간다. 이 방법은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제일 끌리는 방안이다.

모든 것을 접고 파산하는 방안 : 가장 현실적이다. 지금 더 대출을 받을 수 없고, 회사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있는 고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과연 내가 파산을 할 수 있을까?


파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피와 땀과 눈물이 흐른다. 나는 과연 나의 정신상태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회사문제를 직접적으로 당장 해결하지 않고 내 정신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다음 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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