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존재합니까? 두 지성의 고품격 토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와 존중 가득한 대화의 참맛
신은 인간을 대상화한 존재이다.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종교적 본질』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의식을 강타한 몇 문장이 있다. 위는 매 시간 고통에 몸부림치며 필기하거나, 녹음을 믿고 스르륵 잠에 빠지곤 했던 극상 난이도 수업 고전사회학이론에서 유일하게 건져낸 문장. 헤겔의 변증법이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며 그게 다 무언데요. 이걸 진정으로 이해해야한다면 사회학도 됨을 포기하겠습니다, 하며 수없이 녹음을 듣고 또듣고, 프린트를 읽고 또 읽었다. 그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한글 사이로 필기해놓은 저 문장만 유일하게 빛이 났다. 교수님이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분이라 유독 정성스레 설명했던 탓일까. 아마 그는 무신론자가 아니었을지.
신은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이라고 말하는 포이어바흐. 그의 견해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추상화해서 절대적인 존재로 신격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종교는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심리학, 인간학적 관점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 이를 두고 유신론자들의 많은 반론이 있었을 테지만, 무신론자인 나에게는 그야말로 종교에 대한 갈증과 의문이 사르륵 해소되는 통찰이었다. 이렇게 명쾌할 수가. 신은 내가 의식하지 못했던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때마다 인간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온 인간적 현상이며, 종교는 인간 스스로를 찬미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해온 것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이자 거대한 지성, 프로이트와 C.S.루이스가 앞선세대의 무신론자 포이어바흐에게서 영향을 얼마나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신의 존재를 두고 라스트세션을 펼치는 흥미로운 소재라니, 포이어바흐의 의식적 인도에 따라 다분히 인간적인 현상으로 영화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둘이 실제로 만났는지는 알 수 없다. 작품의 시작은 작가의 지적 호기심과 문학적 상상력이 결합된 흥미진진한 세팅값이다. 다만 프로이트가 사망 3주전 옥스퍼드에서 온 묘령의 교수를 만났다는 기록에 기대와 만약을 반반-걸어본다. 아니면 어떤가.
만남이 사실이라면 당시 프로이트의 나이는 84세, 루이스는 42세로 배역을 연기한 실제 배우들의 나이와도 유사하다. 루이스는 전쟁 중이던 1929년 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 회심하며 당대 유명한 유신론자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를 알고 프로이트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C.S.루이스가 회심하게 된 배경과 유신론의 논리를 직접 청해 들어려던건 아니었을지 생각해본다.
인상깊었던 점은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대등한 위치에서 끈질기게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주제를 두고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생과 사에 대해 종과 횡을 오가며 품격있는 대화를 다채로이 그려낸다. 프로이트의 변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듯했으나 그것이 어떠한 견해를 지지하거나 옹호한다는 의도는 아니다. 충분한 논리적 무장에 화자가 바뀔 때마다 핑퐁-랠리하듯 내 생각도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었다.
연극과 달리 영화에는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아버지를 따라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그녀는 아동심리전문가이다. 아버지에 대한 굉장한 심리적 의존도와 동성애 성향을 가졌다는 설정도 뒤따른다. 일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아버지의 건강에 예민함을 보이는데 이는 때로 비정상적 집착으로 보일 정도이다.
약간의 조사에 따르먼 그녀가 프로이트를 학자이자 아버지로써 매우 존경했으며, 동성애가 치료 불가능한 질병이라는 프로이트의 의견에 반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작품 내에서지만, 프로이트가 자녀의 동성애를 알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에 더욱 무게를 실었던 건 아니었을까하는 상상도 해본다. 동성애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 본인이 질병이라 칭한 이력이 있으니, 신이 없어야 딸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본래 연극으로 먼저 제작되었던 『라스트 세션』과는 매체가 달라진 만큼 흥미로운 점들이 관찰된다.
연극이 프로이트와 C.S. 루이스의 대화에 중심을 둔 2인극으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앞서 언급한 안나 프로이트 등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으로 영화는 한껏 풍부해진 서사를 자랑한다. 주제가 가볍지 않은 만큼, 묵직함과 깊은 사유를 즐기는 이라면 연극의 몰입감 있는 대화에 젖어들기를 좋아하겠다. 그러나 수면과 심해를 오가며 무거움을 적당한 흐름에서 털고가는 ‘그외 인물’들의 이야기는 엉덩이를 붙이고 딴생각의 틈을 메우며 쫀득하게 몰입감을 덧붙여준다. 어떤 것이 먼저이든 상관 없으니, 영화와 연극 모두 관람하여 이야기를 깊이와 다양도 측면에서 더 풍성히 맛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화를 하다 갑자기 관람객은 딴 세상을 몇번 경험하게 된다. 주 무대인 프로이트의 방 안에서 숲속, 전쟁터, 병실 등으로 화면 전환이 이뤄진다. 신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종교만 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있다고 믿었던 과거 경험, 신을 믿을 수밖에 없는 계기, 그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 종교에 관한 인상 등 두 사람의 머릿속은 꼬리를 물고 다양한 심상으로 이리저리 향한다. 인물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동안 이야기는 ‘신과 종교’에서 ‘삶 그 자체’를 향해 확장된다. 전자가 곧 후자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밖에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무한한 자원을 품고 영원히 사는 인간들이란 이 유한한 행성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동일한 사실을 이해하는 방식은 매우 상이하다.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겸허한 인간으로서 이 또한 신의 뜻이라 받아들일 텐가. 고통을 눈감는 신은 무슨 소용이냐며 자유 의지를 지닌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소멸하는 것이라 생각할 텐가.
죽음을 앞두고 이분법적으로 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니, 정말이지 프로이트다운 말과 행동이다. 학제적 토론으로 크게 번질 주제이지만 생각의 흐름을 다잡아서, 나는 다시 결국, 죽음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가로 돌아와보았다. 현세와 내세 모두에서 인간은 신을 많이들 찾지만 가장 필요로 할 때는 죽음 직전과 직후가 아닌가 하고. 전쟁 중이던 작품의 배경 역시도 종교가 필요했던 때가 아니었는가 하고. 바로 그 때 유신론과 무신론의 입장에 선 둘의 대화는 곧 죽음과 고난에 대한 통찰은 아니었을지.
고린도전서 16:14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따뜻함을 발견할 줄은 정말 몰랐다. 두 지성인의 극렬한 대립이 이어지는 장면 앞에 심장을 쪼그러트리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쏟아지는 종교학, 심리학 용어 앞에 무지렁이처럼 무너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관람 전 연극 버전을 관람한 경험이 있거나, 두 인물에 대한 배경지식을 세팅하고 본다면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데 물론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이자 무신론자이고, 루이스가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전향한 유명한 학자이자 작가였다는 간단한 사실 정도만 인지해도 충분히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을 꼭 언급하고 싶다.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설정들도 하나씩 체크해보며 생각의 퍼즐을 나름대로 맞추어 나가는 것 또한 이러한 faction 장르의 묘미인 것 같다.
지면의 한계로 흥미롭게 보았던 모든 디테일을 논할 순 없지만 종내는 이해와 존중, 위로가 영화의 진정한 키워드였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글을 마친다.
“인류가 풀지 못한 과제를 둘의 하룻밤 대화로 풀어보려 하다니 이보다 더 미친 짓이 있을 수 있나.”
"우리는 오류를 오가며 온전한 진실을 발견한다.”
- 프로이트의 대사 중에서
출생: 1898.11.29. 영국 벨파스트
사망: 1939. 9.23. 영국 옥스퍼드
15세 때 어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무신론자가 되었다가 성공회 신도로 회심하였다. 유년 시절 부터 노르웨이,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많았고 이는 추후에 『나니아 연대기』 집필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다. 『나니아 연대기』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문학으로, 다양한 종교적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형 워렌 루이스, 『반지의 제왕』 을 집필한 J.R.R. 톨킨을 주축으로 함께 ‘잉클링스’라는 문학 사교 모임을 즐겼다.
출생: 1856. 5.6. 체코 프르지보르
사망: 1939. 9.23. 영국 런던
7명의 자녀를 두었으며 안나 프로이트는 그 중 막내 딸이다. 1922년, 극 중 시점으로 17년 전 구개암 진단을 받은 후 사망 전까지 총 32차례에 달하는 수술을 받았다. 1938년,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하였다. 병에 시달리다 의사에게 모르핀 투여를 지시하여 사실상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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