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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과 올리브 Jan 18. 2022

마법 같은 연말: 도시와 스펙터클

도시, 시각문화로 읽다: 신세계 백화점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

*2021년 12월에 쓴 글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분위기를 사랑하시는 분들은 읽지 마세요.



    핼러윈의 호박과 유령 장식들이 슬슬 유리창에서 모습을 감출 즈음, 도시의 주황색은 더욱 열기를 머금고 붉은색으로 모습을 바꾸어간다. 마치 가을의 단풍이 시간이 지나며 색을 더 하는 것처럼. 경복궁의 나무들은 이미 색색의 잎을 다 떨구고 겸허한 겨울의 황량한 회색으로 모습을 감추었으나, 광화문대로의 건물들은 겨울잠에 들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겨울 단풍을 펼쳐나간다. 시작은 스타벅스의 메뉴판부터다. 붉은색으로 치장한 메뉴는 달아오른 얼굴로 ‘나를 마셔요’하며 속삭인다. 그리고 그 속삭임에 넘어가 메뉴를 열댓 개쯤 마시면 우리는 스타벅스로부터 다이어리나 탁상시계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게 된다. 귀여운 곰돌이 쿠키가 얹어진 한정판 라테를 들고 나와 좀 더 도시의 길거리를 누비다 보면, 거대한 호텔과 쇼핑몰이 번쩍거리는 전구로 칭칭 감겨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번쩍번쩍 점멸하는 것은 카페인과 당으로 뒤덮인 내 위장만이 아니다. 플라자 호텔 로비 앞에 놓인 거대한 소파와 웨스틴 조선의 나무들은 알전구로 칭칭 감겨 이미 본래의 모습을 잃고 한 뭉텅이의 빛무리가 되었다. 눈을 자극하는 빛을 뒤로하고, 조금 더 재게 발을 놀려 명동 사거리로 나아가면 드디어 한 폭의 스펙터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러운 신세계 백화점의 디지털 파사드를 만나게 된다.

오트밀 색이었던 신세계 본점의 외벽은 거대한 서커스 천막으로 변신했다. 거대한 초록색 트리 벽에는 붉은색과 황금색 전구가 알알이 박혀 반짝거리고, 천막의 화려한 돔 아래에는 ‘Magical Holidays’, 마법 같은 휴일이라는 문구가 빛나고 있다. 그래, 정말로 마법 같다. 색과 빛으로 만들어낸 곡예 같다. 개시 한 달 전부터 인적 드문 새벽마다 설치 노동자들이 애써 하나하나 장식을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정말 마법사가 나와 지팡이 한 번 휘두르고 만들어 낸 것만 같다. 마침 전광판에 재생되고 있는 영상에 서커스 단장의 모습이 등장한다. 이 단장이 만들어낸 마법이라는 것일까. 제일 꼭대기 신세계 로고의 양옆은 너울거리는 휘장이 장식하고 있다. 저기에 신세계라는 이름을 달기 전, 미쓰코시 백화점이었던 건물의 과거는 화려한 디지털 천막에 가리어져 보이지 않는다. 옥상에 올라가 아무리 정오의 종소리를 들어보았자 날개가 돋을 것 같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의 황금색 종소리는 끊임없이 들려올 것 같다.

일요일 저녁, 사람들은 속속들이 모여 신세계 백화점의 일루미네이션을 바라보고 있다. 연인, 가족, 친구. 각자 무리를 이뤄 길모퉁이마다 서서 번쩍거리며 스쳐 지나가는 영상을 본다. 도시 스펙터클이 주는 시각적 효과는 소요자의 발을 멈추게 하고, 거리를 응시하게 한다. 길 위의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는 광경은 섬뜩하다. 제각각 발이 가는 방향으로 흩어져야 하는 시선이 하나에 모여 있다는 것에 소름이 돋는다. 거대한 미디어 광고가 명동 한복판에 세워져 있다. 이 광고는 끌 수도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여든다. 연말의 따뜻한 감정을 가슴에 품고서, 서로 손을 잡고. 이제 쌀쌀한 날씨를 피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면 특별 행사 상품을 사고 나올지도 모른다. 디지털 파사드에 붙은 것과 같은 이름으로 진행되는 연말 판촉 행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Magical Holidays. 그야말로 마법 같은 명절이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한 명절이 되었다.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시즌 매출은  매출의 10% 넘게 차지하고, 공연, 요식업 등의 예약 등도 평월의 3배를 넘는다. 그야말로 소비의 계절이다. 도시의 계절은 자연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맞추어 돌아간다. 팔아 치워야 하는 것들이 넘치는 계절, 황량해지고 있을 틈은 없다. 색과 빛으로 물들이는 것에 더욱 박차를 가할 . 그리고  색과 빛은 우리에게 가족, 연말, 감사, 아름다움 같은 따뜻한 감각을 일깨운다.  아래에 숨겨진 것에 대해서 궁리하는 일은 마치 무정한  같은 인상을 주면서. 내가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을 보면서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과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했을 , 조금 외로워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0QtVF13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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