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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민 Dec 18. 2021

자연의 권리와 인간의 목적

《자연의 권리》를 읽고

 자연환경을 보전해야 한다거나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고 쉽게 공감하며 동의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 나무, 강 등의 자연에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말은 생소할 뿐 아니라 어딘가 불편하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할 수 있을까, 자연에 권리를 부여해야 할까,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게 왜 불편한가. 《자연의 권리》를 읽고 든 질문들을 고민해보고자 한다.


1. 사람도 아닌 자연에 권리를 부여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자연이 인간이라거나, 자연에 인권이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침팬지, 닭, 범고래에게 선거권은 당연히 무의미하다."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법이 자연을 법인격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법인격체'란 법에 의해 특정한 권리 능력을 부여받은 실체로서,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기업도 법인격체이며, 배, 교회,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법인격에 수반되는 권리와 책임은 그 실체의 속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기업과 인간은 서로 다른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예를 들어 기업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지만, 생명권의 보호를 받지는 않는다.(p. 90.)


그들의 지각, 지능, 의식에 비추어 볼 때, 동물이 각자의 종에 적합한 동물권을 누려야 한다는 주장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박쥐, 조류, 영장류는 각각 박쥐의 권리, 조류의 권리, 영장류의 권리를 가질 것이며, 그 내용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공통된 핵심이 있고, 그 핵심에는 생명권, 자유권, 적절한 서식지에 대한 권리가 포함될 것이다.(p. 98.)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도 떠오른다. '자연에 권리가 있다면 자연의 의무는 무엇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권리에 의무가 뒤따른다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여 나온 잘못된 질문으로 보인다. 권리에 의무가 뒤따른다는 말은 어떠한 권리의 주장이 누군가에게 적절한 행위를 이행하도록 하는 의무를 부과한다는 의미이다. 자연의 권리가 인간에 자연 보호 의무를 부과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에도 어떠한 의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자연의 권리 주장에 자연의 의무를 묻는 것은, 생존권 주장에 납세의 의무를 들이미는 것과 같다. 세금을 납부해야 생존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2. 인권의 틀 안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가? 꼭 자연에 권리를 부여해야만 하는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기 이전에, 인권의 이름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인권 이론은 기후위기의 영향,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과 대응능력의 차이 등을 고려하며 사회취약계층이나 미래 세대의 이해관심 침해를 막기 위해 자연 보호에 인권의 이름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인권의 관점에서도 인간은 자연의 가치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자연을 보존•복원할 의무가 인간에게 있다는 사실이 자연에 권리가 있음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자연의 가치가 인간의 존재와 독립적으로 존재할지라도, 그 자체로 자연의 권리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자연에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 중심적 사고에 갇혀서는 문제의 해결이 불가하다고 본다. 유일하게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우월한 지위에 위치하고 자연을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상정한 시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 아래에서도 자연에 대한 착취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의 가치를 보존•복원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한도 안에서 인권 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자연에 법인격을 부여하여 자연이 인간과 같은 지위에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을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자연 속의 인간으로 재인식해야만 한다.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기존의 인권 관점과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인권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조효제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자연파괴는 재귀적으로 인간과 자연에 피해를 유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손상시킨다. 인간 존엄의 훼손과 비인간 자연계의 훼손이 함께 발생하는 이익침해의 융합으로 인해 더 이상 인간만의 권리를 논하기 어렵다. 따라서 조효제 교수는 자연에까지 확장되고 재구성된 권리관을 통해 피해자로서의 자연을 인식하고 소극적 방관자를 적극적 행동자, 혹은 구조자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3.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어딘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지위 재설정 문제로 보인다. 데카르트 이후 세워진 자연으로부터 우월한 존재로서의 지위가 인간 역사 전체에서 길지 않은 시간을 차지한다지만, 여전히 현대의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자랑스러운 이성을 활용하여 볼 때, 비인간 동물도 지능을 비롯한 이성을 지녔다는 과학적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여 일부 종의 일부 능력은 인간을 능가한다. 더 이상 인간은 유일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지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디서 인간 종의 특별함이나 목적을 찾을 것인지로 보인다. 물론, 인간에게 어떤 특별함도, 어떤 목적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사는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종이 아직 인간밖에 없다면, 그 질문의 끝을 향해 달리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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