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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민 Feb 11. 2022

죽음의 nobody는 somebody가 될 수 있을까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을 읽고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노동건강연대 기획/이현 정리

 이 책은 2021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 소식이 담긴 단신 모음이다. 책의 제목 《2146, 529》에서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를, 529는 그중 추락 등의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를 의미한다. 하루 대여섯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나는 사회에서의 그들의 부고는 그 소식의 길이만큼이나 짧은 슬픔만 남기며 매일 반복된다.


맥스웰 딜런_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스틸컷 / 네이버 영화
일렉트로_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스틸컷 / 네이버영화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전기 엔지니어 맥스웰 딜런(이하 맥스)은 전기설비 작업을 하던 중 고압 전선에 감전되어 미끄러져 전기뱀장어가 담긴 수조에 빠지는데, 실험 중이던 전기뱀장어에 물리는 큰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사망한 줄 알았던 맥스는 놀랍게도 다시 살아나는데, 되살아난 맥스는 고압의 전기를 자신의 몸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고 이후에는 전선을 타고 이동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빌런 일렉트로가 된다.


 그런데 그가 빌런이 되는 서사, 그리 생소하지 않다. 아니 너무 낯익다. 맥스도 야간에 안전장비나 다른 관리자 없이 위험한 작업에 홀로 투입되었다(명령에 의한 투입으로, 그가 자발적으로 들어갔다고 볼 수 없다.). 맥스가 사고를 당한 그날은 맥스의 생일이었는데, 우리는 본인의 생일에, 자녀의 생일에, 혹은 결혼식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출근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노동자의 부고를 수없이 들어왔다.


 책에 담긴 수많은 노동자의 부고를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중 일부가, 아니 한 명이라도 일렉트로 같은 빌런이 되었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서 사회악으로서의 빌런의 필요성을 역설하려는 건 아니다. 또한 누군가는 빌런에 서사에 공감하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빌런조차 되지 못하는 이들의 일상에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했던가.


https://n.news.naver.com/article/newspaper/032/0003127650?date=20220211


 어제(2월 10일) 김용균 씨 사망사고가 일어난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관련자들의 1심에서 원청업체인 한국서부발전의 사장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한다. 맥스가 일하던 오스코프 사는 맥스 사고를 은폐하고 맥스의 탓으로 돌리려고 했다. 여전히 nobody인 투명인간은 somebody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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