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머리 끝까지 났을 때는 찬물도 끼얹어 주는 변호사가 필요하다
법률 상담을 하러 갔는데, 법적 분쟁은 가급적 피하라고 말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어떨까?
조그마한 억울함도 침소봉대하여 "당신의 권리를 찾으세요!"라고 소리치는 변호사가 태반이라고 하는데, "소송 걸기 전에 최대한 상대방과 협의를 해보세요. 필요하면 내용증명도 보내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하되,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신중하시는게 좋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억울해 화가 나 죽겠는데, 내 편이라고 생각한 변호사가 찬물을 확 끼얹는 것 같아 짜증이 치솟을지도 모르겠다. 내심 '자신 없나?'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다른 변호사를 찾아가니 이거는 바로 소송을 걸어야 할 사안이고, 승소도 장담한다고 한다. 비용은 조금 부담스럽지만, 상대방에게 받아낼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지불할 용의가 있다. 그렇게 그 변호사와 선임 계약을 체결한다.
그러나 화가 나 머리 끝까지 나서 열이 나고 있다면, 누군가 찬물을 끼얹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맞아요! 아플 때에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봐야죠!"라며 다소 불필요하거나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는 항생제나 스테로이드를 대거 처방한다면? 그 순간에는 최고의 치료를 받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그게 올바른 의료적 처치인지는 의문이다.
환자가 미어터지는 병원을 하나 알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건데, 아마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명의로 소문이 나서 너도 나도 방문한 것일 거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해당 병원이 환자들(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스테로이드를 대거 처방하였다는 것이다. 고된 육체 노동을 통해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갔더니 금방 몸이 개운해지는 경험을 하였다면 몸이 아플 때마다 생각나지 않겠는가?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이 매우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처방을 삼가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몸이 조금 쑤신다고 하여 스테로이드 처방을 대거 하는 의사는 그 부작용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결코 아니었다. 충격적이게도 "어차피 스테로이드 부작용이 나타날 즈음이면 그 사람들은 이미 한국에 없다"라는 말이었다.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법적 분쟁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사)소송은 몸도 마음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큰 부담이 따른다. '2022 사법연감'에 따르면 1심 사건이 처리되는 기간이 평균 364.1일(합의부 기준)이라고 한다. 소송을 제기하면 1년 후에나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걸로 끝인가? 우리나라는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니 상대방이 항소하면 2심도 1심에 준하는 기간(혹은 그 이상)이 걸릴 것이고, 2심에 대하여 대법원에 상고하면 심리불속행* 판결이 되지 않는 한, 정말 언제 판결이 날지 기약이 없이 기다려야 한다.
(* 심리불속행: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판결 이유의 기재 없이 기각하는 대법원의 재판)
시간이 지나면 화도 점차 가라앉고, 못 받은 돈도 내심 없었던 돈으로 인식하게 된다. 몸도 마음도 지쳐간다. 순간의 분노에 비싼 변호사 선임료를 지불하면서까지 소송을 진행하였는데, 초기에 많은 관심을 쏟아줬던 담당 변호사도 점차 연락이 뜸해진다*. 상대방의 반박을 읽다 보면 왠지 승소도 자신이 없어지고, 사건을 상담했던 변호사도 말을 바꾸는 것 같다. 이제는 소송은 가급적 피하라고 말했던 처음 변호사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준 것 같기도 하다.
(* 내가 선임한 변호사는 내 사건만 수행하는게 결코 아니다. 그들에게 나는 수십, 수백 명의 의뢰인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무턱대고 싸움 붙이는 변호사보다는, 성난 분노에 찬물을 끼얹어 줄 수 있는 변호사가 사건 수임도 많이 하고 성공하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해본다.
2023. 6. 2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