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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 Jul 02. 2023

변호인은 흉악범도 적극 변호해야 할까?

범죄자 변호의 역설

죄를 지은 범죄자를 두둔하는 형사 변호인의 이미지는 어떨까?

좋은 이미지는 아닐 것 같다. 조금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결국 생계를 위해 일하는 사람 정도로 보아줄 수는 있겠다.


헌법과 형사법규는 피의자, 피고인*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변호인의 조력권을 제도화하고 있고,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보장되어야 하는 인권이 있는 만큼 범죄자를 적극 변호한다고 하여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않는 한) 변호인을 비난할 수는 없다. 도리어 변호인들의 변호 활동은 적극 권장되어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줄여가는 것이 선진 입법이라고 할 것이다.


(* 피의자는 형사입건 되어 수사기관의 수사를 받는 자를 말하고, 피고인은 검사의 기소에 의해 재판에 회부된 자를 말한다. 피의자로 수사를 받다가 피고인으로 신분이 전환된다. 참고로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자를 '수형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변호 대상이 흉악범이라면 어떨까? 조금 극단적으로 말해 수십 명을 살해한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라면? 일단 형사소송 관련 법령은 변호인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경우에도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아무도 해당 살인범을 변호하지 않으려고 했을 경우를 대비해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하는 국선변호인 제도까지 두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3조(국선변호인) ①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 변호인이 없는 때에는 법원은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
1. 피고인이 구속된 때
2. 피고인이 미성년자인 때
3. 피고인이 70세 이상인 때
4. 피고인이 듣거나 말하는 데 모두 장애가 있는 사람인 때
5. 피고인이 심신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때
6. 피고인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기소된 때


그리고 이렇게 선정된 국선변호인은 자신이 해당 피의자, 피고인을 변호하고 싶지 않다고 하여 마음대로 사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형사소송규칙>은 국선변호인이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만 사임할 수 있도록 하고, 사임 사유로는 다음과 같이 4가지를 열거하고 있다.


형사소송규칙

제20조(사임) 국선변호인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법원 또는 지방법원 판사의 허가를 얻어 사임할 수 있다.
1. 질병 또는 장기여행으로 인하여 국선변호인의 직무를 수행하기 곤란할 때
2.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부터 폭행, 협박 또는 모욕을 당하여 신뢰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3. 피고인 또는 피의자로부터 부정한 행위를 할 것을 종용받았을 때
4. 그 밖에 국선변호인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흉악범의 변호를 맡게 된 국선변호인으로서는 비자발적으로 해당 사건을 떠안은 것인데다, 여론의 지탄을 받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소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자신이 변호하는 대상이 더욱 중한 판결을 선고받기를 내심 원하고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보통 그 정도의 흉악범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적극적으로 변호에 임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심 천번 만번 죽여 마땅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냥 "흉악범도 인권이 있기 때문"이라는 공자님 말씀을 읊으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런 작자들마저도 변호를 받을 권리가 보장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인권'의 절대성을 부각하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수십 명을 살해하여 누가 보더라도 인간이라면 마땅히 따라야 할 규범을 져버려 인간이기를 포기하였더라도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변호인 조력권을 향유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그런 인간 말종도 그만큼의 권리를 누리는데 피해자들은 얼마나 거룩한 존재였는지를 역으로 생각하게 한다. 물론 그 흉악범에게도 "너 같은 인간 말종도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절대적 권리를 누리고 산다. 그러니 네가 피해자들로부터 생명을 앗아간 행동이 얼마나 심각하고 중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인지를 알겠냐?"라고 말해볼 수는 있겠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은 뻔하지만 말이다.


결국 그 흉악범을 적극 변호한다는 것은 그 흉악범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그 흉악범마저도 적절한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함으로써 인권의 절대적 존엄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지상정과 다소 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의견을 비난하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네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써보아야겠다.



2023. 7.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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