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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비 Jul 04. 2023

아프면 비로소 다르게 보이는 것들

고통의 순기능, 예비군 화생방 이야기

최근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백신을 4차례나 맞고, 마스크를 철저히 잘 써서 그 동안 잘 넘겨왔는데, 막바지에 감염되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람마다 아픔의 정도가 다르다고는 하는데, 저는 꽤 많이 아픈 부류에 속하나 봅니다. 침을 삼키면 목이 찢어질 것 같네요.


일상이 무료해지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에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라고는 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렇게 아파보는 것도 일상에 변화를 주는 전환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회사 일이 밀려있어도 앓아 누워있다 보니 반강제적으로 업무와 거리를 두게 되고(심지어 출근금지조치까지 받았습니다!)

일상의 소소함, 즉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시간 날 때 산책하는 것, 가까운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 등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유한한 인생 가운데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살아야 하는지, 회사의 업무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도 심화된 듯합니다.


머리로는 이러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고 이해하고는 있었으나, 온 몸으로 이를 깨닫게 해주니 더욱 절실히 다가옵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방독면 착용 및 가스실 체험 훈련을 받을 때의 일입니다.

화생방 교관이 이전 예비군 차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예비군이 개인적으로 자신을 찾아와, 자신이 사회에서 취업도 안 되고 하여 앞이 캄캄하다. 방독면 없이 가스를 체험하여 정신이 바짝 들어보는 경험을 하고 싶다. 이번 훈련에서 그게 가능하겠냐고 묻더랍니다.


화생방 교관은 규정상 그런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안되지만, 예비군님이 정 그러시다면 모든 화생방 훈련이 종료된 후 따로 자신을 찾아오라. 가스실 가스를 빼내기 전에 한번 체험을 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훈련이 끝난 후 교관 자신은 방독면을 쓰고, 그 예비군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단 둘이 가스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CS탄을 정면으로 맞는 그 고통이란!

30초 쯤 지나니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예비군이 이제 충분히 겪었으니 이만 나가보고 싶다고 했답니다.

아주 잠깐이었으나 그 예비군은 만족할만한 고통(?)을 겪고는 무사히 퇴소하였다고 하네요


과연 그 예비군은 가스실의 고통을 토대로 새로운 다짐을 하여 사회에서 잘 헤쳐나가고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분입니다.


일상이 무료해지거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할 때에는 때로는 아파보는 것도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픔을 통해 고민했던 사항들이 다 낫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치열하게 고민했던 생각들은 내 의식의 기저에서 성숙해진 채로 발현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프기 전과 아프고 난 후의 나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예비군의 눈물, 콧물이 과연 오롯이 CS탄 때문만이었을까요?

울고 싶은 심정을 토해낸 것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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