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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아킴 Oct 23. 2024

전력산업 민영화, 그 뒷 이야기 15

타이슨과의 첫 만남

UWUA와의 면담을 마친 일행은 워싱턴 힐튼 호텔로 향했다. 거기에서 타이슨 슬로컴을 만날 계획이었다. 타이슨의 사무실은 미국 의사당에서 걸어서도 20분이면 넉넉히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 유명한 팬실바니아 애비뉴. 연방정부 주요 기관들과 대사관들이 몰려 있는, 어쩌면 세계 정치의 중심부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길이다.


처음 타이슨의 사무실을 찾아갈 때가 생각이 났다. 2003년 5월이었다. 공동연구단이 생기기 전, 어찌어찌 알게 된 타이슨에게 메일을 보냈고 이런저런 설명을 하고 찾아갔다. 당시 방문 목적은 한겨레 신문사의 취재를 돕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한국의 전력산업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힌 언론사는 한겨레 신문이 유일했다. 그래서 접촉했고 한겨레는 기자 한 명과 민영화 실패국가에 대한 기획취재를 제안했다. 기자 한 명을 소개받았고 그와 몇 차례 사전 협의를 했다. 


박원빈 기자는 사실 전기 쪽에는 별로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단 전력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고 눈앞에 닥친 문제를 공유했다. 박 기자는 신문기자 특유의 흡입력으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이슈를 파악했다. 몇 해 뒤 유사한 취재를 함께 했던 동아일보의 기자 역시 유사했다. 신문기자들의 학습 능력에 탄복했다.


취재 일정을 잡았다. 먼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단체 TURN, 새크라멘토의 캘리포니아 주 에너지부를 취재하고, 동부로 날아가 워싱턴에서 타이슨,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 FERC, 그리고 버지니아에 살고 있던 존 카사자를 취재한 후, 성공적인 전력시장으로 불리던 PJM을 취재했다. 이후 캐나다 전력자유화의 선도적 위치를 차지했던 온타리오주의 전력회사 온타리오 하이드로, 토론토 시의 전력회사였던 토론토 하이드로를 거쳐 캐나다 공공노조 CUPE 1을 취재한 후 런던으로 날아갔다. 


런던에서는 공공노조 유니슨의 관계자들을 취재한 다음 그리니치 대학의 스티브 토마스 교수를 만날 예정이었다. 스티브 역시 최용석이 개인적으로 알게 된 전력 관련 전문가로 이후 한국에도 여러 차례 왔었다. 당시 기획취재는 이렇게 미국, 영국 두 나라 중심으로 진행했고, 이후에도 한전의 전력노조는 이런 방식의 민영화 실패 취재를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 덜레스 공항에는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밤 11시 비행기를 탔는데, 워싱턴에 내리니 아침 7시가 돼 있었다. 비행시간은 4시간 정도였는데, 두 도시의 시차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미리 예약한 허츠 렌트카를 타고 지도를 참고 삼아 타이슨의 사무실이 있던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넘었다. 


사무실 앞에 주차하고 한숨을 돌린 최용석이 살펴보니 박 기자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엄청 피곤했을 것이다. 물론 최용석도 피곤했다. 하지만 뭔가 모를 사명감 때문인지, 아니면 기자를 잘 안내해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피로를 느끼지 못했다. 박 기자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좋은 아침 햇살이 차 안으로 비치고 있었다. 상쾌한 봄 햇살을 맞으며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우리의 이런 고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 지금 몇신가요?

잠에서 깬 박 기자가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9시가 조금 넘었네요. 피곤하시지요? 한국에서 시차도 있고, 동부와 서부 시차도 있고, 밤 비행기도 탔고요.”


최용석의 대답에 박 기자는,

“최 부장님은 안 피곤해요?”

라며 누워져 있던 의자를 끌어올리며 물었다.


“글쎄요, 저는 체질적으로 시차를 잘 안 느끼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용석의 대답을 들으며 박 기자는 양손으로 눈을 비비며 잠을 깨려 노력했다.


“여기가 그 친구 사무실인가요?”


“예. 저도 지도 보고 찾아왔는데 바로 이 건물 같습니다. 번지수가 맞네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SE 215번지. 퍼블릭 시티즌. 팬실바니아 애비뉴는 남북으로 삐딱하게 뻗어 있는 꽤 긴 길이라서 북쪽은 북서를 의미하는 NW, 남쪽 지역은 남동을 뜻하는 SE라는 표현을 반드시 넣었다. 이를 잘못 이해하면 엉뚱한 곳에서 같은 번지 두 개를 찾게 된다.


최용석과 박 기자는 퍼블릭 시티즌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 현관의 벨을 눌렀다. 평범하게 생긴 흰색 3층 건물이었다. 인터폰으로 누구냐를 묻는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최용석은 타이슨을 찾는다고 했다. 인터폰이 끊어지고 조금 지나 타이슨이 현관문을 열었다. 사실 타이슨의 얼굴을 모를 때라 처음에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타이슨은 함빡 웃는 얼굴로 일행을 맞이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했다. 최용석 일행도 자신들을 소개하고 차례로 타이슨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일행은 타이슨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타이슨과의 첫 만남이었다.


아담한 회의실로 들어간 세 사람은 다시 정식으로 각자를 소개하고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박원빈 기자가 타이슨에게 질문을 했다.

“퍼블릭 시티즌이라는 단체가 꽤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소개를 부탁합니다.”


“예, 우리는 기본적으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시민단체라고 보면 됩니다. 원래 시작은 자동차 관련 소비자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생겼지요. 1960년대 당시의 미국은 대기업 제품의 피해를 받는 소비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없었지요. 대기업들 상대로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활동에서 시작돼서 현재는 다양한 방면의 시민활동을 벌입니다. 전력산업 자유화에 대한 비판도 우리 활동의 일부입니다.”


타이슨은 유창한 언변을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자기가 이 단체 속에서도 입법 관련 로비가 전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무실도 의회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박 기자는 미국 전력산업 자유화의 문제점을 질문했고, 타이슨은 명쾌하게 대답을 했다. 모든 대답이 명쾌했다. 타이슨의 첫인상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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