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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ke Mar 11. 2023

집 앞 화산이 터졌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빈번히 폭발하는 화산에 속하는 므라삐는 비교적 최근인 2010년의 폭발로 3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었다. 비슷한 시기 남서쪽의 반뚤에서는 지진으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었기 때문에, 족자카르타의 북쪽에 속하는 화산 아래쪽에 집을 얻는 것이 더 큰 위험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었다. 산중턱이다 보니 좀 더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는 장점 또한 있었다. 므라삐가 바라보이는 기분 좋은 전망 역시 마찬가지인데,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창문밖으로 보이는 앞집 지붕 너머의 므라삐 화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보통은 구름에 가려 화산 전체가 보이는 경우가 드문데 최근엔 날씨가 좋아 유리창 너머로도 구름이 끼지 않은 므라삐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았었다. 오늘 아침엔 날씨가 좋은데도 불구하고 구름 때문에 므라삐가 잘 보이지 않아 약간의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커피를 한 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소식을 검색하던 아내가 깜짝 놀라서는 므라삐가 터졌다며 동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므라삐의 서쪽 옆구리에서 시작된 작지 않은 분출이었다. 동영상 속 사람들의 다급한 소리를 들으니 폭발이 잦아지면 동네가 위험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이곳의 강들은 오래전 므라삐가 분출했을 때 용암이 흘러서 생긴 것들이다. 따라서 다시 용암이 흐르더라도 90%는 그 강들이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이, 강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10%의 용암이 우리 동네로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막연한 걱정 막을 수는 없다. 지난번엔 500km 넘게 떨어진 자카르타까지 갔다던 므라삐의 화산재는 10km 거리의 우리 집까지는 당연히 영향을 미치겠구나, 하는 일종의 체념도 마찬가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니 아이들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기사분들은 세차를 하고, 건너편 집을 짓는 분들은 동일하게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 세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백두산보다 높은 산 하나가 집 안에서 보일 정도로 가깝게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곳 사람들은 저 므라삐를 영산으로 알아 므라삐 형태로 조글로(자바의 전통가옥)를 건축하고 있을 정도니 므라삐 아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자부심을 갖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화산으로 인한 몇 가지 위험을 일종의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저 무서운 화산 때문에 왕국의 수도가 동쪽으로 옮겨가기도 했고 쁘람바난과 보로부두르는 폐허가 된 채로 수백 년의 시간을 견디기도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생과 세계사에는 늘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화산이 분출될 때 나오는 화산재는 무기질의 보고인데 이 무기질이 이곳의 농지를 비옥하게 해서 므라삐의 서쪽에 위치한 저 유명한 끄두 평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3 모작이 가능한 끄두 평원의 엄청난 농업생산력은 마타람 왕국과 이후의 왕국들, 술탄국들의 무수한 영광을 만들어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행운과 불운의 요소 중 어느 쪽을 더 크게 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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