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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물선 Dec 05. 2023

롱코비드 (2)

또 다른 환자는 60대 남자 환자로 코로나 감염 이후 기력이 없고 도저히 살기가 힘들 정도로 체력이나 의욕이 떨어져 뭐든 치료를 받고 싶다며 찾아왔다.


이런저런 검사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고 이상지질혈증 정도만 있었다. 몇 차례 외래 진료를 보며 이야기 나눠보니 밤에 자다가 네다섯 번쯤 깬다고 한다. 5년 전 이혼을 했다.


환자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버지는 공부를 참 많이 하신 분이었는데 월남전 참전 용사로 PTSD에 시달리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어머니와 본인, 가족들을 학대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환자 본인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서 편도 6시간 정도 걸려 국립정신병원을 다녔단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못 배워서" 먹고살려고 낮에는 장사하고 밤에는 방범대원을 하느라 세상 온갖 험한 꼴을 다 보면서 살다가 이제와 이혼을 했다는 거다. 그나마 재산이랄만 집을 포함해 재산은 전처에게 다 넘겨주고 옷만 챙겨 입고 걸어 나와버렸다고.


그 뒤에 이제 코로나에 걸렸는데 지금 같이 사는 여자는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챙겨서 보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자기기만 세워가지고 내내 집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댄다'는 것이다. 본인은 '잘 살아'보려고 책임감만 가지고 동생들, 어머니, 아버지 챙기고 살아왔는데, 잘 살려고 술 한 모금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애만 무진 쓰고 살았는데 코로나에는 왜 걸렸고 왜 이렇게 아무런 기력이 없고 왜 이렇게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지 모르겠 단다.


일을 좀 배우려고 글을 읽어도 눈에 뭐 하나 걸려 남는 것이 없다. 이미 수년 전부터 주변에서 우울증, 불안증 치료받으라고 수없이 이야기 들었지만 그 시절 아버지가 약 먹고 잠만 퍼 자던 익숙하면서도 끔찍한 모습을 떠올리면, 도저히 정신과 약은 무서워서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자꾸 울어서 미안합니다 박사님" 하면서 이야기하는 환자와 결국 항우울제와 불안장애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환자가 나았는가? 환자가 치유되었나?

살다 보니 많은 문제를 만난다. 내 문제인 경우도 있고, 남의 문제인 경우도 있다. 남의 문제인 경우는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진짜 문제는 도움을 구하러 온 사람조차도 스스로의 문제를 온전한 형태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진정 모르거나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질적인 병이라면 그것은 운 나쁜 로또와 같아 나 이외의 세계를 비난할 근거가 명확하다. 하지만 기능적인 병이거나 그보다도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라면 어떨까. 환자 자신이 명확히 이해할 수 없는 병인인 탓에 스스로 인생에 대해 죄의식을 하나 더 짊어지게 될 것만 같은 예감을 지울 수 없어 눈을 돌려버리고 만다.


두 번째 환자를 만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외래에서 보지 못한 지는 반년도 넘었다. 그 환자는 나았을까? 치유되었을까? 잃어버린 잠을 되찾고 기력을 되찾아 야간 방범을 하며 주폭자와 빡 센 기싸움을 하고 있을까? '이혼한 마누라', '함께 살던 여자' 둘 모두와 행복하게 살며 어머니께 효도를 하고 있을까? 약 먹고 잠든 아버지에게 선선히 부채를 부쳐주고 있을까? 내가 처방해 준 알약을 사탕처럼 굴리며 동생들과 나눠 먹고 있을까? 선업이란 무엇인가? 눈앞에서 익어가는 고통과 사망의 열매에 나는 매일 약을 치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도 나는 미안하게도 병을 나눠 앓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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