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Dec 17. 2022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말년 -1

망상의 시작

나르시시스트는 현실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자신의  외모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주변 또한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맘대로 주물럭 거릴 수 있다고 평가절하를 한다.


이런 세상에 대한 관점 때문에 그들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고 착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본인이 말을 뱉고 본인의 손으로 액션을 취하는 이상 엇나가는 일은 없다고 확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에게 돈을 때였다 거나 해보면 알겠지만 이들은 발각이 되면 자잘한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시간을 벌기에만 급급하다. 망상에 기반한 자신감으로 어떠한 대책도 세워놓지 않고 일을 저지르는 것이 아닐까.


이 전반적인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은 그들이 말년에 병적인 망상에 빠져 더욱더 사회적으로 고립되는데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내 생모의 케이스는 흔치가 않기에 한번 써보려 한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나르시시스트 엄마와 가정폭력, 알코올 의존 동시에 바람을 피우는 아빠 사이 불완전한 가정에서 자라나 교육이나 어떠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성장을 했다. 성추행을 어린 나이부터 여러 번 당한 아주 불후한 유년기를 보냈다. 학대와 방임으로 만들어진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그로 하여금 본인의 외모가 단순히 출중한 것도 아닌, 세상에 단 하나뿐이거나 타고난 어드벤티지라고 믿게 만들었다. 눈동자의 색깔도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오묘한 보랏빛 색상이며 출산을 해도 살이 붙지 않는 특수한 체형이라 누누이 강조했다. 어릴 적 나를 포함 섭식 장애가 이 집안 여자들 내력인걸 보면 체질적 체형은 몰라도 정서적으로 음식과 기이한 관계를 가진건 맞다.


특출 난 외모 탓에 이 남자 저 남자 자신에게 들러붙어서 힘들게 산다는 푸념을 어릴 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라났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시절 동네 한량 같은 남자가 가게에 찾아와서 술이 취해 혀 꼬인 채로 꼬장을 부린 적이 있었는데 이걸 매번 자신이 이뻐서 팔자가 사납다는 대표적인 예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외에도 다른 동네 남자들, 심지어는 본인 친구의 남편까지도 가게를 드나들며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려고 애를 썼다는 둥 이런 이야기들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게 일상이었다.


어린 내가 그걸 알아봐 준들 본인에 대한 경외심이라도 생길 줄 알았던 것 걸까? 아니면 그런 자랑을 다 큰 어른들에게 하기엔 친목 명분으로 돈과 시간이 나가니 어린 나를 상대로 배설을 한걸 지도 모르겠다. 내가 커 가면서 어엿 성인이 되었을 때도 이런 이야기를 빈번하게 꺼냈는데 손 하나 까딱 않고도 자신은 이성을 어필한다는 상상에 많이 심취해있었던 거 같다.


내 짐작으론 방임으로 인해 어린 나이부터 성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당시 상황에 대한 전체적 이해(processing) 보다는 그냥 내 외모가 빼어나서 그랬던 것이라고 단순한 합리화를 해서 버텨내는 그런 길을 밟은 듯하다. 본인의 통찰도 깊지 않고 딱히 사고의 길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도 없었을 테니. 그것이 나르시시스트였던 자신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합당한 사고이기도 했었을 거고.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관계망상 시초 격인 도끼병 이외에도 이 여자에겐 행동상 오해를 살만한 문제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정서적인 영역을 침범을 할 때마다 고의적으로 물리적 터치를 한다는 점이었다.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의 허벅지를 살짝 때린다던지, 어깨를 잡는다던지, 팔을 꼬집거나 몸을 밀착시키는 이런 행동을 하는데 지금 세대들이 이런 걸 보면 같은 동성끼리 하는 대화여도 이 여자가 상대방에게 껄떡대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서슴없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상대방의 안위 따위는 상관 안 하는 것도 있었고 감히 나를 거절하겠냐는 그런 자신감도 있었던 거 같다.


나이가 든 후에 알아차린 거지만 이것 때문에 나중에 이민을 와서 오해를 낳게 된 일이 있었다. 관절염 치료차 온천을 가야 한다고 징징거리다가 내 이모부, 그러니 매부 거길 가려던 참이다 하자 남편도 떼어 놓고 자식인 나만 대리고 그 만리길을 따라나선 적이 있다. 같은 모텔에 방 두 개를 잡아 나랑 엄마, 이모부 그리고 사촌 남동생 따로 생활을 했는데 이틀째였나 이모부가 득달같이 화를 내면서 더 이상 이 여자랑 같이 못 있겠다며 자기 아내에게 전화를 하며 소란을 피운 적이 있었다. 그때 그의 말인즉슨 이 여자가 자신에게 계속 추파를 던진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엔 이 남자도 보통 인간 말종이 아니니 우리가 무임승차하듯 여행에 따라붙어 다니는 게 돈이 아깝고이 골이 나서 이런 소란을 부렸나 싶었다. 이게 엄마가 주장하던 내러티브이기도 했고 말이다. 근데 왜 하필이면 엄마가 이모부에게 꼬리를 친다는 얘기를 꺼냈을까 항상 궁금하긴 했었다. 돈을 훔쳤다는 누명이나 다른 것을 덮어 씌울 법도 한데.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럴만한 여지를 주는 행동을 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그게 결혼 한 성인 남자에겐 추파를 던지는 걸로 보였기도 했겠고.


이 여자의 40,50대는 그래도 그렇게 별 탈 없이 지나갔다. 문제는 폐경기가 들어서고 60대에 접어들면서였다.


흔히들 나르시시스트는 말년에 어떻냐는 궁금증을 가진다. 대부분 벼가 고개를 숙이듯 좀 완화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진단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인 스펙트럼에 있는 수준일 테고. 나르시시스트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 개인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인 네트워크가 다 망가지고 여가 시간에 왕래하는 지인들이 아예 사라진다.


카르마, 인과응보 이런 게 이런 걸 얘기하는 거 아닌가 싶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인간관계만큼은 진짜 뿌린 대로 거둔다. 절친의 남편을 탐한다거나, 뒤에서 친한 사람들을 험담하고, 물질적으로 사기를 치려고 한다는 등 이런 식으로 자신의 평판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서서히 고립된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몸도 외모도 그 어필을 잃어가고, 이젠 생활전선에서도 젊고 활기찬 인력들을 보면서 자신이 이 노동시장에서 버림받을 것을 직감하고 비참함을 느끼게 된다. 엄마 같은 경우에 커리어라고 할 게 없었지만 더 이상 3D육체노동을 해서 돈을 적절히 만지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았을 거다. 가족도 다 내 팽개치고 인정, 파워, 과시욕 때문에 일과 외부활동에 매진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은퇴 나이쯤 되면 거의 모래성 무너지는듯한 존재의 위기에 맞닥치게 된다던데.


내 엄마 같은 경우도 그렇게 왕래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소셜 미디어에 목을 매달게 되었다. 자식 앞에선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유지되는 완벽한 본인의 외모에 엄청난 자부심을 매일 같이 표현하면서도 60대에 들어서자 위기감을 느꼈는지 시술을 받질 않나 피어싱을 하곤 돈을 퍼부으며 트렌드에 편승하고자 했다.


고작 했던 건 사진 기반으로 한 소셜 미디어에 상업용 스탁 포토를 캡처 저장해서 올리는 짓이었다. 남이 보면 조회수 조작하려고 만드는 공계 정 이리고 생각할 정도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계정이었다. 살면서 취미도 없고 즐기는 여유나 관심사 자체가 없으니 어떻게 일상에서 공유할 게 있었겠는가. 게다가 나이는 들어가는데 딱히 이뤄놓은 것도 없으니 소셜 미디어에서 조차도 자신의 모든 것을 철저히 비밀에 숨겨둘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나르시시스트가 나를 따라 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