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Oct 06. 2022

강남은 무서웠다.

어느 주차장의 인간 샌드백

 내게 강남이란 이름은 아주 비싼 동네라고만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건물들이 있는 동네. 내가 가 볼일도 없을 것 같아 관심을 두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서울에서 살다보니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데에 가장 만만한 곳이 강남이되었다. 특별히 갈 곳이 생각나지 않으면 강남. 지금의 나에겐 사람들이 버글버글 거리는 곳이 강남이다. 그래서 비싸겠지만...


 첫인상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강남에 처음 간 날 느꼈다. 아는 형을 따라 처음 강남에 갔더랬다. 그래도 서울 살면서 강남 구경은 한 번 가봐야지 했던 나에게 좋은 기회였다. 그 큰 대로를 중심으로 늘어선 대형간판들과 여지껏 보지 못했던 대형 매장들이 신천지였다. 사람이 바글바글대는대다가 멋쟁이들도 많았다. 역시 강남은 다른 동네랑은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구나 하며 위축됨을 느꼈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형을 따라 여기저기 두리번 거리며 따라 가다 어느 골목쪽으로 들어갔다. 술집들이 즐비한 그 골목 한 쪽 주차장에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뭐 재밌는 구경거리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았다.


 사람들의 가운데에 젊은 남자 서넛이 서로 뭐라뭐라 얘기를 주고 받더니 이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사람들을 향해 들어 보였다.


 '남자 1분에 만원, 여자 3분에 만원. 여성과는 피하기만 하고 남성과는 왼손 사용.'


 순간 뭐지 싶었는데 영화에서 보았던 인간 샌드백을 하는 것이었다. 복싱을 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할 정도면 거의 선수급이지 않을까 싶었다. 와~ 신기하다. 영화에서 보던 걸 실제로 보게 되다니 흥미로웠다. 하지만 나서서 해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랬을 것이다. 한동안 지원자는 아무도 없었고 오늘 장사 공치는 건가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 무리에서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며 겅중겅중 앞으로 나왔다. 큰 키의 백인 남성이었다. 린치도 길어보이고 날렵해 보였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박수를 쳐 주었고 다들 기대하는 것 같았다. 복싱 선수 무리 중 한 명이 헤드기어를 쓰고 글러브를 끼는 동안 다른 선수가 백인 남성에게 글러브를 껴 주었다. 만원짜리가 현금으로 오간 후 두 남자가 자리를 잡자 땡~하는 영화에서 듣던 공소리가 나며 시작되었다.


 큰 키의 백인 남성은 긴다리로 움직여가며 그 긴 팔을 휘둘러댔고 움직임을 보니 복싱 선수가 확실하겠다 싶은 남자는 상체를 좌우로 기울여가며 피해갔다. 거의 피하기만 했다. 신기했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을 똑바로 보며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움직임에 감탄이 나왔다. 실제로 복싱경기를 본 적이 없던 나는 그런 움직임이 놀라웠지만 눈 앞에서 사람이 사람을 치려고 용쓰는 모습을 보니 무서웠다. 사냥꾼과 사냥감의 모양새였다.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백인 남성은 자신의 주먹이 빗나갈 수록 화가 올라오는 듯 했고 그런 그를 복싱 선수는 차분한 움직임으로 상대했다.


 생각보다 1분은 길었다. 백인 남성은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팔을 말 그대로 휘둘러댔고 복싱 선수는 말 그대로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갔다. 이제와서 보니 백인 남성은 술에 좀 취한 것 같았다. 1분이 지났고 둘은 포옹을 하고 백인 남성은 격한 제스쳐를 취하며 다시 무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용기를 낸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동안을 쉬는 시간 없이 선수들은 돌아가며 경기를 뛰었다. 그러다보니 그 중 격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주먹을 전혀 쓰지 않던 선수들이 왼손으로 공격을 하기도 하며 가끔 타격이 들어가기도 하는 격렬한 장면이 나타나며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무서웠다. 인간의 공격성을 가까운 거리에서보는 것도 무서웠고 그걸 재밌는 구경거리 삼아 모여들어 보고 있는 사람들도 무서웠다. 아직 낯이 익지도 않은 서울의 폭력성을 보게 된 것 같았다. 불편한 마음으로 난 자리를 떴다.


 그 후 한동안 강남에 가기가 꺼려졌다. 자주 갈 일도 없었지만 어쩌다 갈 일이 생겨도 마음이 불안했고 편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강남가면 몸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수유에서 찾은 보금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