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쌀집아들 Oct 27. 2022

상수역에서 연예인을 보았다.

어느 금요일 밤 나만 아는 뮤지션을 상숭역 근처 술집에서 보았다.

 금요일 밤에 별일 없으면 꼭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가끔 유명 가수들도 나오곤 했지만 인디 뮤지션들의 소극장 공연을 볼 수 있는 방송이었는데 장르의 폭이 워낙 넓어 평소에 찾아 볼 생각도 내질 않았거나 아주 생소한 음악들을 아담한 분위기에서 접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약속 없는 금요일 늦은 밤에 맥주 한캔을 까고 앉아 홀짝이며 보고 있으면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었다.

 

 그 날은 밴드가 출연했었다. 멤버도 3명정도라 손이 부족해보였는데 보컬이 들고 있는 악기도 특이한 게 눈에 띄였고 적은 인원으로도 꽉찬 소리를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롭고 강렬한 소리가 마음에 쏙 들었고 멤버들의 특히 보컬의 무대 액션이 아주 좋았다. 노래 몇 곡을 부르고 중간에 보컬이 멘트를 하는 시간이었데 노래 할때의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태도와 달리 너무 다소곳하고 수줍은 듯이 말을 하는 반전 모습이 너무 흥미롭기도 했다. 순식간에 빠져들어 나머지 공연도 너무 재밌게 보았고 그 인상이 깊게 남았다.


 그 후 몇 주가 지나고 상수역 근처의 술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을 때였다. 그날도 금요일 밤이었다. 무심코 눈을 돌리다 한 쪽 벽에 악기가 세워져 있는 걸 보았다. 가방에 쌓여 있는 악기의 모양이 특이하다 생각하면서도 낯익다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곁 테이블을 보니 세명의 남자가 술잔을 앞에 두고 서로 무언가 열심히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악기의 모양과 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얼마 전 방송에서 봤던 밴드란 걸 알았다. 


 '우와~~~~!!'


 난 내 눈이 휘둥그레 짐을 스스로 느꼈다. 혼자 너무 반가운 나머지 주위 친구들에게도 말했다. 방송에서 본 사람들이라고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고...정말이지 다가가서 팬이라고 싸인 좀 해달라고 사진도 같이 찍어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친구들도 어서가서 그러라고 했지만 괜히 실례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부끄러워 차마 그러진 못했다. 


 하지만 그 술집에 있는 내내 흘깃흘깃 쳐다 보게 되고 셋은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열심히 할까 호기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마 오늘도 공연 한 탕을 뛰고 뒷풀이를 하러 온 거겠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앞으로 밴드의 방향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겠지? 너무 신기한 기분이었다. 연예인과 같이 앉아 술자리를 하는 기분. 약간 황홀하기까지 했다. 저들과 친구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 이런 저런 망상을 하고 있으니 그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악기를 메고 술집을 나갔다. 너무 아쉬웠지만 그저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혼자 뒤에 대고 인사를 하고서야 내 친구들 쪽으로 정신을 돌릴 수 있었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가다 한 번씩 연예인을 마주칠 때가 있다. 난리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짐짓 별일 아닌 듯 스윽 지나가거나 몰래몰래 훔쳐 본다. 내가 살던 동네에선 큰 행사나 가야 새끼 손가락만하게 형태만 보던 연예인을 이렇게 자연스러운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건 서울에 사는 큰 재미 중에 하나다.


 

작가의 이전글 용산에서 만난 사람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