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클럽이란 신세계에 발을 들였다.
홍대 클럽이란 지하 벙커
서울 얘기를 들을때면 한 번 씩 들었던 얘기가 홍대 클럽에 대한 얘기였다. 뉴스에서 가끔 얘기를 듣기도 했고 영화같은데서도 대충 보기도 하며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했었다. 하지만 주로 사건 얘기를 많이 듣다보니 궁금하기도 한 만큼 무섭기도 해서 가보고는 싶지만 덜컥 가볼 엄두는 안났었다.
그러던 중 클럽을 같이 갈 든든한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심히 본전 뽑으러 다니던 직장 근처의 헬스 클럽의 트레이너와 어쩌다 보니 친해졌다. 나보다 두살 어린 어릴 때 야구 선수였었다고 했던 아주 잘생긴 그 남자는 덩치가 나의 두배가 넘어보였고 어깨는 바위처럼 단단했다. 무료 피티 3회가 끝나도 가끔 옆에 와서 운동하는 걸 봐주고 이리저리 잡담을 하다보니 코드도 잘 맞는 것 같으면서 의외로 가까워졌다. 내가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다.
젊은 남자 둘이 속닥거리다 하다 보니 결국 이야기는 흘러흘러 술먹고 노는 쪽으로 갔고 그렇다면 당연하게 홍대 클럽을 가봐야 한다며 함께 가보기로 했다. 그 때만해도 홍대 클럽 데이가 있을 때였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이었던가? 그 날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이 덩치의 남자와 함께라면 그 무서운 곳도 가볼 수 있겠다 싶었다.
약속의 날 나름대로 열심히 꾸미고 든든한 동반자와 홍대 앞에서 만났다. 만나자마자 가장 유명하다고 하는 클럽으로 입장했다. 입구 근처에서 부터 들리는 음악소리와 둠둠 거리는 저음의 비트 소리가 느껴지며 지하로 내려가는 그 계단을 걸으며 설렘과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난 그 친구의 등만 바라보며 혹시라도 잃어 버릴까 하며 따라갔다. 클럽의 문이 열리며 그 사이로 음악소리가 고막을 치고 들어왔고 어두 컴컴하면서 화려한 실내가 보였고 발을 들여 놓는 쿱쿱하면서 향긋한 냄새가 코로 들어오며 잠깐 숨 쉬기가 거북스러웠다. 생각해보지도 못한 느낌의 신세계였다.
'헉....'
한순간에 정신이 없어졌다. 고막을 뚫고 머릿속까지 울려대는 음악소리에 어질어질하고 적응하지 못한 공기에 아찔해지며 어디로 가야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의 어깨 사이에 파묻혔다. 정신 못차리는 나와는 달리 나의 동반자는 아주 여유로워 보였고 나를 돌아보며 자기만 따라오라고 했다. 내 기댈 그 단 한사람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더 절박해졌다. 다른 생각 못하고 그 남자 등 뒤에 더 찰싹 붙어 움찔움찔 걸음을 떼며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갈 수록 사람은 더 많아졌다.
든든한 등판 뒤에 딱 붙어 정신을 좀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춤이라기 보단 몸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음악을 즐긴다기 보단 음악에 맞춰 애써 몸을 움직이고들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표정들도 딱히 즐거워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투쟁심이 보이는 얼굴 들이었다.
'뭐야...왜 이런 델 오는 거지...' 홍대 클럽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이었다.
어리버리한 정신을 조금 추스리나 싶으니 술을 사오겠다며 동반자가 자리를 비웠다. 혼자 두고 가지말라고 했지만 잠깐만 있으라고 하며 그는 인파를 헤집고 수영하듯이 어딘가로 갔다. 혼자 된 불안감을 이겨내고 뭔가 재미를 찾으려고 했다. 한참을 지나 양 손에 병맥주를 들고 트레이너는 돌아왔고 어쨌든 큰 마음 먹고 왔으니 조금 시간을 보내며 버텼다.
음악소리와 공기에 익숙해지고 인파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리를 이동해가며 구경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렇게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 층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아래층의 사람들은 음악과 상관없이 지하 벙커 같은 곳에서 검은 파도 물결을 만들며 여전히 들썩이고 있었다. 한동안 그 관경을 보다 나는 클럽을 빠져나왔다. 조금 더 있다 가자고 했지만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 하고 먼저 나와 집으로 갔다. 무언가 서울의 깊은 퇴폐미를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