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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chel Mar 21. 2023

택시에서 느낀 올드팝의 향수

그 시절 영어 배우는 법

택시를 타고 가던 중, 기사님은 조용한 정적이 싫으셨는지 라디오를 틀으셨다. 여느 라디오와 같이 라디오 DJ는 신청곡과 사연을 번갈아가며 소개했고 나는 관심 없이 창밖만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 신청곡이라며 어떤 팝송이 흘러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묘하게 귀에 익은 올드팝.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에서 흥얼거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봤는데... 뭐지?'



나는 뭔가 알듯 말 듯할 때 누구한테 물어보거나 인터넷에 검색하지 않고 스스로 기억해내고 싶어 하는 편이다. 생각이 안 나던 걸 비로소 기억해 냈을 때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은 것처럼 시원하지 않나?! 약간 나만의 쓸데없는 고집 같지만 딱 이런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이 끝까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문제인가..?) 아쉬워할 시간도 없이 음악이 끝나기 전에 서둘러 네이버 음악검색으로 검색하고 나니 그제야 음악에 얽힌 추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Cliff Richard의 'Early in the morning'.


초등학생 때 영어 선생님께서 수업을 마무리할 때 들려주신 올드팝이었다.



https://youtu.be/O0BahZE5NCM


초등학생 때 영어 과목 선생님은 항상 수업이 끝나기 10-15분 전쯤에 올드팝 받아쓰기(Dictation)를 하게 하셨다. 괄호 안에 빈칸이 숭숭 뚫린 A4 가사지를 나눠주시곤 팝송을 2-3번씩 반복해서 들려주셨는데 빈칸을 다 채우고 나면 선생님과 같이 한 줄씩 다시 듣고 해석해 보면서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선생님은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방법으로 영어를 놀이처럼 재미있게 배우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 교육방법은 나한텐 아주 효과적이었다. 다음 시간엔 또 어떤 노래를 들려주실지 그게 너무 궁금해 매일 영어수업만 기다렸으니까! 오히려 영어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이 '아이돌 K팝 밖에 모르던 내가 팝송을 들으면서 이해한다고? 나.. 좀 멋진데..?'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기도 했고!


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아주 제대로 통한 셈이다.




여기에서 문득 궁금해지는 포인트.

- 이때 팝송 선정 기준은 뭐였을까?

- 요즘 초등학생들도 이렇게 영어를 배우려나?


선생님의 음악 취향보다도 초등학생이 충분히 따라 쓸 수 있을 정도로 가사가 잘 들리는, 느린 노래 위주였던 것 같다.


지금 기억나는 노래들이 Carpenters의 Top of the world, Michael Jackson의 Heal the world, Westlife의 My love 그리고 Fools garden의 Lemon tree 인걸 보면 어쨌든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들로 구성하셨던 것 같다. (쓰고 보니 다 추억의 명곡들 뿐이네..)




영어 실력도 늘고 새로운 음악에도 관심을 갖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이게 바로 선생님이 원하시던 올드팝 받아쓰기의 긍정적인 효과가 아니었을까?




그때 들었던 노래를 들으니 순수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나 따뜻하게 아이들을 대해주시던 선생님 생각도 나고. 택시 안에서 그렇게 나 혼자 아련한 추억여행에 푹 빠져 있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택시에 내려서는 이 노래를 포함해 그때 들었던 그 노래들을 플레이리스트에 몽땅 추가해 이따금씩 듣곤 한다. 올드팝이 남긴 향수는 왠지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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