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곤 한다. 100세 시대에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한 것이 맞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닌 사회적인 규범에 따라 내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이 삶을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등등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내면에서 충돌하고 부서진다. 하지만 이 강연을 듣고 나서 끝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제대로 나이를 먹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나이는 음식도 아닌데 한 살 먹는다고 하지 않나. 엄정식 교수님께서는 나이는 삶의 진행을 위해 먹는다고 하셨다. 음식에 비유했을 때, 건강을 위해 바람직하게 음식을 먹어야 하듯, 나이도 바람직하게 먹어야 건강하다고 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삶을 비유하는 표현 중에 등산과 항해를 예시로 들며 설명해 주셨다.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 발짝씩 내딛는 것 그리고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가는 것.그것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저마다의 항해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덜 표류하고, 덜 정박하기 위한 내비게이터 삼각자를 선물로 주셨는데 바로 이 강연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1. 내가 원하는 것 (욕구) 2. 내가 할 수 있는 것 (능력) 3. 내가 해야 하는 것 (의무)
이 세 가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계속 들여다보는 과정이 자아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자 내가, 나로서, 나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질문들이 누군가에게는 쉬울지 몰라도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 어려워 답을 내리기 조차 힘든 질문일 수도 있으니, 특히 의무/당위에 대해서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받아보라는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나의 욕구나 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기에 실수를 해도 다시 시도하면 그만이지만 당위로서의 자아는 ‘남이 바라보는 나’이기에 파악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단순하고 사소한 것 같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세 가지 질문을 언제나 명심하면서 살아야겠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것에 급급하기보다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물으면서 나답게 살고, 제대로 나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아주 피상적인 수준이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봤다. 그랬더니 비로소 나의 삼각자는 어떤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상적인 삼각의 형태는 아니다. 다만 어떤 형태이든 세 각의 합이 180도를 이루는 삼각형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 대해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어려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를 관통하는 말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이 말의 본질을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된 것 같다.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단 내면에 집중하며 나이 드는 것을 음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