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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Jun 01. 2024

퇴근 후 니체를 마주했습니다

당신도 나도 아무도 숲을 보지 못한다


오랜만에 퇴근 후 삼일문고 강연 자리에 참석했다.


'쇼펜하우어&니체 입문 아카데미'라는 주제의 강연이었고, 두 차례 강연 중 니체 철학을 들었다. 한 달 전쯤, 서점 한 켠에 마련된 '니체 철학하기' 코너를 통해 강연 소식을 접했다. 니체 철학을 찾아보는 사람들이 근래에 많아지기도 했고, 한 번쯤은 마주해 보고 싶어서 신청 접수를 했었.



강연 참석 당일, 퇴근 후 심정은 복잡했다.


업무 처리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 해당 일자에 개인 마감 시재가 맞지 않았다. 의심되는 거래를 CCTV 돌려봤고, 손님께 을 더 내드린 점을 육안으로 확인했다. 손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금액이 확실히 맞다고, 의심하지 말라는 답변만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혼란스러웠고, 복잡했다.


신청해 둔 강연에 참가해야 하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나 고민하다 그냥 서점으로 향했다.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저 친구에게 충분히 하소연한 후, '고통은 삶에서 불가피하고, 필수적이다'는 니체를 마주하러 갔다.



철학자이자,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도서를 쓴 허경 작가님이 강연을 진행하셨다. 강연의 헤드라인 '프리드리히 니체, 서양 철학의 역사를 바꾸다'는 문장으로 니체를 처음 마주했다. 니체 이전의 서양 철학은 '실체 탐구'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무엇이 '참'으로 존재하며, 무엇이 '진리'인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를 탐구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 짓기 위해.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다. 당시 서양 철학은 숲을 볼 줄 아는 통치자, 진리를 규정하는 자가 있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니체는 답한다. "당신도 나도 누구도 숲을 보지 못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니체 철학의 핵심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소크라테스의 한 줄은 '너 자신을 알라.'이고, 데카르트의 한 줄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니체의 대표 문장은 '신은 죽었다.'이다.


니체는 그의 저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는 표현을 썼다. 여기서 신은 그리스도교적 신을 말한다. 당시 서양 철학의 배경에는 그리스도교가 주를 이뤘고, 이분법에 따라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로 나뉘어 있었다. 신의 세계는 절대적이자, 진리, 선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니체는 종교가 추구하는 절대 선이나 초월적 가치는 붕괴되었고,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니체는 세상을 향해 말했다. "본질도, 진리도, 불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다.  또한 모른다!"라고. 신은 죽었기 때문에 판단의 주체도 없고, 신은 죽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불공정하다고 말한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발언은 자신의 가문, 종교,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자 자기비판적 해석이다. 강사님의 저서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의 책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니체의 발언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정답이 있는 사회가' 끝났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니체가 살아가던 당시의 사람들은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삶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정답이 정해져 있었다. 무슨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떤 종교를 가질지, 결혼을 할 것인지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의 직업이 곧 자신의 직업이고, 결혼과 출산은 나이가 차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다. 니체는 이런 답이 정해진 사회의 종결을 알린 것이다.



니체 철학은 '관점주의 철학'이다. 말 그대로 '관점이 모든 것'이다. 신이 있다고 믿는 내가 있기 때문에 신이 존재할 수 있다. 모든 인식에는 관점이, 그리고 관심이 선행한다. 니체는 말했다. "동일한 텍스트가 무한히 많은 해석들을 허용한다. 하나의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라고 믿는 진리는 나의 관심 안에 들어온 해석된 것이다. 나의 진리는 나의 진리일 뿐이다.


강연을 하는 강사님도 니체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본인의 관점으로 해석해 전달한다. 우리가 보는 뉴스 기사의 내용도 사실이 아닌 해석에 의해 설명된다.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니체에 관해 이해된 부분만, 글로 남기고 싶은 부분만 쓰고 있다. 강연의 내용도, 이 글도 결국 해석만 남을 뿐이다.



본질도, 진리도 없고, 신이라는 절대적 존재도 없다면 우리는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없어지는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니체는 오히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해 줄 주체가 없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신 대신 '위버멘쉬(초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초인은 기존의 가치를 넘어서고,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사람을 뜻한다. '매일 자신과 전투를 벌이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왜 사는 지를 자문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니체는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이룰지, 후회 없는 인생은 어떻게 살지에 관한 질문에 니체의 대답은 이렇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어제보다, 그전보다 더 나아진, 발전하는 스스로를 만들어야 할 이유다.



니체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해 줄 주체가 없으니 막살아라'가 아니다. 니체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런 게 아닌 가 싶다.


삶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다. 인생에 하나의 정답은 없고, 각자의 답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만의 가치를 자신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겪어온, 그리고 앞으로 겪을 고난과 불행도 인생의 일부이니 자신의 운명을 마음껏 사랑하라!





니체를 마주했던 그날 강연은 3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었다. 사실 강연의 내용은 서론도, 본론도, 결론도 장황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철학자 니체 한 사람이 아닌 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동시에 다뤘다 보니 인풋이 과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과하게 표현하면 고통스럽기? 까지 했다. 철학은 원래 '검토 examination'의 영역이라는 강사님의 말처럼 강연 내용을 잘 이해한 게 맞는지, 이론적인 내용과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 검토하듯이 생각하게 되다 보니 머리가 아팠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에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연을 듣고 복잡해진,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네...' 그날을 그렇게 미완으로 마무리했다.




지금 이 글은 니체 관련 책들을 살펴보고 발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강연을 통해 니체에 입문했다면 독서라는 작업을 통해 니체를 좀 더 탐구해 볼 수 있었다. 니체의 사상과 철학을 다 알 수는 없다.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부분만을 담았다.


나와 모든 생각이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타인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화가 날 수도 있다. 니체에 의하면 이는 어떤 인간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권력의지를 의미한다. 그럴 때면 나의 권력의지를 인정하고,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니체처럼 결국 더 나아지려는 자신과의 투쟁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강연 내용 중 '니체는 자신의 주장에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았다.'는 강사님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너는 나무만 볼 수 있지 숲을 못 봐. 나도 숲을 볼 수 없어. 우린 알 수 없어. 나도 몰라!"라고 말하는 게 니체다. 자신의 주장에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는 것. 이것이 "신은 죽은" 사회에 필요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여전히 어렵다. 철학이어서,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어서 한계를 느낀다. 겸손함을 느낀다. 니체도 모르는데 어찌 내가 진실을 진리를 정답을 알고 있듯이 살아갈 수 있을까 싶다. 내가 알고 있는 게 믿는 게 답이 아닐 수도, 내가 틀릴 수 있음을 되뇌어 볼 뿐이다.



니체의 철학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은 나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니체를 마주한 시간이 우연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데 글 쓰는 고통이 있었다. 그만큼 쉽게 써지지 않았다. 나름의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써내려 갔다. 이 또한 니체의 철학이지 않을까.




한 번쯤은 니체를 마주하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자신을 믿어라.
인생에서 최대의 성과와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험한 삶을 사는 데 있다.

위대한 인간이란
역경을 극복할 줄 아는 동시에
그 역경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프레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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