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치,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요즘 어딜 가나 인형 뽑기가 유행이다. 한 번도 뽑아본 적 없는 과거의 경험들 덕분에? 길에서 마주치는 인형 뽑기방은 항상 무사히 지나쳤다.
그랬는데 어느 한 날은 돈을 쓰더라도 한 번은 뽑아보자는 마음으로 동생이랑 뽑기방을 찾아갔다.(퇴근하고 헛헛한 마음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작정 가보았다.) 처음에는 뽑지 못하다가 돈을 쓰는 만큼 결국은 성공했다. 감이 생긴 건 지 그 뒤로는 다른 기계에서도 인형을 뽑았다.
이 날 3만 원 정도를 쓰고 작은 인형 열 개를 뽑았다. 한 번에 우르르 뽑았을 때의 그 쾌감은 이게 바로 도파민이구나 싶었다. 양손 가득 인형들을 들고 있자니, 어른인데 이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돈도 버는 데 기쁘면 그만이지 싶었다.
최근에 한 영상을 보았는 데, 요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인형 뽑기를 즐긴다는 내용의 뉴스였다. 경기 불황일수록 인형 뽑기는 유행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적은 돈으로 귀여운 인형을 가질 수 있는 행동을 내가 했다.' 인형 뽑기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빠르게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면서도, 즐거운 일도 기쁜 일도 찾기 어려운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매일의 출퇴근과 데칼코마니 같은 하루, 그래서 그런가 보다. 돈을 쓰더라도 재미를 찾나 보다. 인형을 뽑고, 성취감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나 보다. 즐거움은 찰나지만 잠시면 어떻고, 돈을 쓰면 좀 어떻냐는 생각이 든다. 참고 살아야 할 것들이 이것 말고도 너무나도 많은 데 말이다.
이런 불황형 소비 패턴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는 데, '트리트노믹스 현상'이라고도 부른다. 경기 침체, 취업난, 스트레스 속에서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 경험, 감정 보상에 소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기분 전환'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소비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라부부 열풍'이 불고 있다. 처음에는 못생긴 인형을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출근해서 일을 하다 손님이 없는 틈 시간에 게시판을 보다가 'Ugly-cute 라부부 열풍'이라는 제목의 금융연구소 보고서를 보았다.
중국 완구 브랜드 '팝마트'에 관심이 생겼고, '블라인드 박스와 시크릿, 한정판 전략'의 마케팅이 브랜드 경험을 창출한 점이 인상 깊었다. 라부부 언박싱 숏츠가 왜 인기인지 이해가 됐다. 유튜브도 보다 보니 인형도 어느새 귀여워 보였다.
그러다 어제, 라부부 인형 한 박스를 당근마켓에서 구매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기꺼이 소비했다. 동생과 함께 하나하나 언박싱을 했다. 랜덤 박스를 뜯어보는 그 손맛을 느끼며!
신기하게도 시크릿 굿즈가 나왔다. 72분의 1 확률의 기적만큼 얼마나 기뻤던 지, 이런 걸 왜 사나 싶던 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 몰랐다. 인형도 실물로 보니 더 귀여웠다. 내가 마련한 즐거움에 뜻밖의 행운도 더해진 기분이었다.
나만의 소비를 통해 나를 확인하려는 욕구가 강한, 감성적 가치를 위해 기꺼이 지출하는 소비자, 거기에 내가 부합해 버렸다. 박스채로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갖췄다는 사실과 이런 소확행의 경험은 만족감을 주었다. 원하는 인형은 갖고, 나머지는 선물할 계획이다. 언박싱하는 순간은 짧았지만 충분히 즐거웠다. 팝마트의 마케팅 시도는 지속되고 있어서 유행은 꽤나 이어질 것 같다.
내 돈으로 사는 작은 기쁨, 누군가에게는 사치이고 낭비일 수 있지만 소비는 자유이고 취향이다. 즐거움을 느끼고, 챙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작은 기쁨이어도 놓치지 않고 지키며 살고 싶다. 적당한 선에서 적당히 좋은 순간들을 즐기며 말이다.
퇴근 후 인형 뽑기방을 기웃거려도, 라부부 굿즈가 탐나도 그 또한 내 마음의 방향일 테다. 유행처럼 사라질 테지만, 즐길 수 있을 때 능력껏 즐겨보고 싶다. 당신은 작은 기쁨을 위해 어떤 소비를 하나요? 물음을 남기며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