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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끝자락, 감사한 마음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

by 미리


추석 황금연휴가 어느덧 출근을 바라보고 있다. 일하는 평일 시간은 그렇게 더디게 가는 데, 쉴 때는 시간이 참 속절없이 지나간다. 오늘도 늦잠을 푹 잤다. 눈을 뜨고도 이불을 살포시 덮고, 다시 잠들어도 되는, 그런 시공간이 참 좋았다.


늦은 점심을 먹고 가족과 함께 집을 나섰다. 우리 집은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낸다. 예전에는 모이는 사람도, 올리는 음식도 많았지만, 지금은 간소화해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차례를 지내고, 다 함께 바로 성묘를 지내러 갔지만 지금은 자율적으로 편할 때 알아서 간다. 우리 가족은 비가 오지 않은 오늘 오후에 산소를 찾았다.


'성묘'의 사전적 정의는 조상의 묘를 관리하고, 조상에게 예를 표하는 가족 의례다. 우리 집안은 십몇 년 전, 아빠와 할아버지가 주관해서 이장을 했고, 집안 조상님을 한자리에 모셨다. 아빠 스스로도 살아생전 가장 잘한 일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조상님들을 좋은 터에서 모시게 되었다.




몇 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화장을 한 뒤, 산소에서 장례절차를 마쳤다. 그 후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 이곳을 방문해서 할머니를 뵈러 왔다. 오늘도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믹스커피, 과자, 과일 등을 챙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언덕을 올랐다. 절을 올리고, 돗자리를 펴고 쉬어갔다. 하늘도 올려다보고, 나무들도 보면서 자연 속에서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얼굴은 뵌 적 없는 집안의 다른 조상님들의 묘비 쪽으로도 가보았다.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나는 재미로 신점을 가끔 보러 가는 데, 그럴 때마다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있다. '조상님 덕'을 잘 보고 있다고, 조상님이 잘되도록 항상 지켜주신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든든한 말을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인생에 감사함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말이 안 될 수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는가. 조상은 망자가 되어서도 자손이 눈에 밟힌다고 한다. 그런 내리사랑이 있음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후손의 마음. 오늘 잠시나마 짧게나마 그런 시간을 가졌다. 인생은 보이지 않는 것에 기댈 때도 있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을 때가 있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보이는 것에도 그렇지 않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낀다. 조상님 덕을 보고 있는 건 조상을 모시는 아빠의 마음과, 차례 음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정성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는 그저 조상님의 안부를 묻고 감사함을 얹을 뿐이다.


조상님을 모시는 관행이 간소화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제사를 지내는 횟수는 줄고, 명절 때 차례와 성묘도 거창하게 지내지 않는다. 산소도 관리해 주시는 분이 따로 있어서 벌초하러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어가고 있다. 내가 나서서 하는 역할은 없지만, 명절 때 여행 간 적도 많은 후손이지만, 너그러이 귀여워해주실 것 같다.



산소에는 돌아가신 분들의 묘비가 세워져 있고, 또 누군가를 위한 자리가 미리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죽음과 삶의 경계를 느낀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감사함'이 흐른다. 나를 지켜주는 조상님이 있어서 감사하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무언가'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집안이 있고, 저런 집안이 있는 차이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잠시나마 조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건 어떤가요?라는 물음을 남겨본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연휴를 잘 마무리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생각이 여차여차 글이 된 오늘 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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